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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율곡 이이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 위에 조선 최고의 학자가 되다

by onary 2025. 11. 16.
 

1536년, 강릉 오죽헌(烏竹軒). 신사임당(申師任堂)의 셋째 아들. 어머니는 이미 유명한 예술가였고, 학자였으며, 덕망 있는 여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이는 그런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날 때부터 기대가 컸고, 어머니의 명성이 항상 따라다녔다. 이 소년은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해 역사상 최연소 진사가 되었고, 29세까지 9번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으며, 48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선의 개혁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이것은 위대한 어머니의 그늘 아래서 태어났지만, 그 가르침을 넘어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고, 조선 최고의 학자가 된 이야기다.

 

강릉 오죽헌의 전통 서재. 신사임당이 붓으로 책의 글자를 짚어 가르치고, 옆의 어린 율곡 이이가 존경 어린 눈빛으로 집중해 듣는다. 뒤로 초충도·포도 그림 두루마리와 책 더미, 창밖의 검은 대나무가 보인다.


1. "신사임당의 아들입니다" - 위대한 어머니의 그늘

1540년경, 이이 4세. 강릉 오죽헌. 외가에서 자라고 있었다. 아버지 이원수(李元秀)는 관직으로 한양에 있었고, 어머니 신사임당은 친정인 강릉에서 자식들을 키우고 있었다. 어머니는 특별했다. 그림을 잘 그렸고, 글씨를 잘 썼으며, 시도 짓고, 자수도 놓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식 교육에 열심이었다. 어느 날, 어린 이이가 물었다.

"어머니, 사람들이 어머니가 대단하다고 해요." 신사임당이 웃었다.

"그런가? 어머니는 그저 배우기를 좋아할 뿐이란다."

"저도 어머니처럼 되고 싶어요." 신사임당이 아들을 안아주었다.

"이야, 너는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어머니를 닮으려 하지 말고,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라."

4세 소년은 그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머니의 따뜻함은 기억했다.

1542년경, 이이 6세. 어머니가 글을 가르치기 시작했다.『천자문』부터 시작했다. 이이는 빠르게 익혔다. 한 번 보고, 두 번 보면 외웠다. 신사임당이 놀랐다.

"이야, 너는 정말 똑똑하구나."

"어머니, 더 배우고 싶어요."

"그래, 더 배우자꾸나." 어머니는 단순히 글만 가르치지 않았다. 덕성(德性)을 가르쳤다.

"이야, 학문이 아무리 뛰어나도 덕이 없으면 소용없다. 사람이 먼저이고, 학문은 그다음이란다."

"사람이 먼저요?"

"그렇다. 착한 마음,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학문도 제대로 할 수 있단다."

이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먼저... 덕이 먼저...' 6세 소년이 배운 첫 번째 교훈이었다.

 

2. 10대 초반, 천재 소년 - "13세에 진사가 되다"

1545년경, 이이 9세. 한양으로 이사했다. 아버지가 한양에서 관직 생활을 하고 있었고, 가족이 함께 살게 되었다.

이이는 본격적으로 학문을 배우기 시작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사서(四書)를 읽고, 오경(五經)을 공부했다. 스승님들이 감탄했다.
"이 아이는... 보통이 아니다. 한 번 들으면 이해하고, 두 번 들으면 외운다."

1548년, 이이 12세. 문장력이 이미 어른 수준이었다. 시를 짓고, 글을 쓰고, 토론을 했다. 어른들이 놀라워했다.

"신사임당의 아들답구나." 하지만 이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나 자신이기도 하다.'

1549년, 이이 13세. 진사시(進士試)에 응시했다. 보통 20대에 응시하는 시험이었다. 하지만 이이는 13세였다. 시험이 시작되었다. 문제를 보고, 답안을 썼다. 막힘없이, 자연스럽게. 결과 발표. 급제. 13세 이이, 진사시 급제. 조선 역사상 최연소 진사.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신사임당의 아들이 13세에 진사라니!", "천재다, 천재야!"
하지만 이이는 들뜨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합격했어요." 신사임당이 미소 지었다.

"잘했다, 이야.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란다. 이제 시작이다."

"네, 어머니. 알고 있어요."

"자만하지 말고, 계속 배우고, 계속 겸손해라." 13세 소년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겼다.

 

3. 16세, 어머니의 죽음 - "세상이 무너지다"

1551년, 이이 15세.

행복한 시간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학문도 논했다. 신사임당도 건강했고, 가족도 화목했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1551년 5월, 신사임당 병환.

갑자기 병이 들었다. 이이는 밤낮으로 어머니를 간호했다. 약을 올리고, 간병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회복하지 못했다.

1551년 5월 17일.

신사임당, 세상을 떠났다. 48세. 이이는 무너졌다.

"어머니! 어머니!"

통곡했다. 15세 소년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전부였다. 스승이었고, 친구였으며, 삶의 이유였다. 그날 이후, 이이는 달라졌다. 3년상을 치렀지만, 슬픔은 가시지 않았다. 학문에도 흥미를 잃었고, 세상이 허무했으며, 살아갈 이유를 찾지 못했다. 19세가 되던 해, 이이는 집을 떠났다. 금강산으로 갔다. 불교 공부를 시작했다. 승려가 되려고 했다.

'어머니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

 

4. 20대, 방황에서 돌아오다 - "어머니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1555년, 이이 19세.  금강산에서 불교를 공부했다. 경전을 읽고, 명상을 하고, 수행했다. 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밤, 이이는 꿈을 꾸었다. 어머니가 나타났다.

"이야, 너는 왜 여기 있느냐?"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그리워서..."

"어머니는 네가 불교 승려가 되길 원하지 않는다. 너는 유학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을 바꿔야 한다. 이야, 어머니는 항상 네 곁에 있다. 네가 바르게 살고,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면 그것이 어머니를 기쁘게 하는 것이다."

이이는 꿈에서 깨어났다.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어머니라면 뭐라고 하셨을까?' 대답은 명확했다.

'세상으로 돌아가라. 너의 자리로 돌아가라.'

1558년, 이이 22세.

금강산을 떠났다. 한양으로 돌아왔다. 다시 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목적이 생겼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하겠다.' '백성을 위하고, 나라를 개혁하겠다.' 22세 청년의 새로운 출발이었다.

 

5. 20대 후반~40대, 9번 장원급제와 개혁 정치 - "구도장원공"

1564년, 이이 28세.

별시 문과에 응시해 장원급제. 이후 생원시, 진사시, 문과 등 여러 시험에서 계속 장원. 29세까지 총 9번 장원급제.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불렸다.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기록. 하지만 이이는 자랑하지 않았다.

"시험은 수단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1569년부터 관직 생활.

벼슬길에 올라 개혁을 추진했다. 백성을 위한 정책을 제안했고, 당쟁을 조정하려 했으며, 10만 양병설을 주장했다.

"지금 조선은 위기입니다. 개혁하지 않으면 망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당파 싸움이 심했고, 기득권이 강했으며, 개혁은 번번이 좌절되었다.

1584년, 이이 48세.

과로로 병이 들었다. 평생 나라를 위해 일했지만, 개혁은 완성하지 못했다. 임종 직전 제자들에게 말했다.

"내가 못다 한 일을 너희가 이어라. 백성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해라."

1584년 1월 16일, 율곡 이이 세상을 떠났다. 48세.

하지만 그가 남긴 『성학집요』, 『격몽요결』 등은 조선 성리학의 기둥이 되었고, 그의 개혁 정신은 후대에 전해졌다.

 

🌸 결론: 어머니의 가르침을 넘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하다

율곡 이이의 어린 시절은 축복이자 부담이었다. 신사임당의 아들. 태어날 때부터 기대가 컸고, 늘 비교되었다.

"신사임당의 아들이니 당연히 똑똑하겠지." 4세 소년이 들었던 말. 그리고 이이는 그 기대를 넘어섰다. 6세에 어머니에게 배웠고, 13세에 조선 최연소 진사가 되었으며, 29세까지 9번 장원급제했다. 하지만 이이의 진짜 위대함은 시험 성적이 아니었다.

15세에 어머니를 잃고 방황했지만, 22세에 다시 일어섰고, 48세까지 조선 개혁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어머니의 가르침을 실천했다.

"사람이 먼저다, 덕이 중요하다. 백성을 생각해라."

이것이 신사임당이 아들에게 가르친 것이었고, 이이는 그것을 평생 실천했다.

율곡 이이가 남긴 것은 학문만이 아니었다.

"기대를 넘어서라. 좌절해도 다시 일어나라. 배운 것을 실천하라."

이것이 율곡 이이가 보여준 삶이었다. 4세에 어머니에게 배우기 시작했고, 13세에 최연소 진사가 되었으며, 29세까지 9번 장원급제했고, 48세까지 조선 개혁을 위해 싸웠다. 비록 개혁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정신은 영원히 남았다. 44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신사임당의 아들에서 조선 최고의 학자로. 어머니의 가르침을 넘어 스스로의 길을 개척한 율곡으로.

이것이 율곡 이이가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가르침이 만든 성현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이이, 『율곡전서(栗谷全書)』 - 한국고전번역원
  • 이이, 『성학집요(聖學輯要)』 - 한국고전번역원
  • 이이, 『격몽요결(擊蒙要訣)』 - 한국고전번역원
  • 『선조실록(宣祖實錄)』 - 국사편찬위원회

참고 서적

  • 금장태, 『율곡의 생애와 사상』, 서울대학교출판부, 2002
  • 이병도, 『율곡 이이 연구』, 일조각, 1973
  • 윤사순, 『율곡 철학 연구』, 연세대학교출판부, 1998
  • 최영성, 『율곡 이이』,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5

학술 논문

  • 금장태, "율곡의 생애와 학문", 『한국유학사상대계』
  • 윤사순, "율곡의 정치사상", 『한국사상사학』
  • 최영성, "율곡과 신사임당", 『한국철학논집』
  • 이광호, "율곡의 개혁사상 연구", 『유학연구』

관련 유적

  • 강릉 오죽헌 (보물 제165호) - 강원도 강릉시 (율곡 생가)
  • 율곡 이이 유적 (사적 제525호) - 경기도 파주시
  • 자운서원 - 경기도 파주시

관련 기관

  • 율곡기념관 (강릉)
  • 율곡문화관 (파주)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국학진흥원

참고 사이트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강릉 오죽헌  

※ 본 글은 『율곡전서』, 『선조실록』과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율곡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신사임당의 교육, 13세 진사 급제, 어머니 사망 후 방황 등이 중심이며, 가족 관계와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13세 진사 급제(1549), 신사임당 사망(1551), 9번 장원급제(~1564), 관직 생활, 사망(1584) 등은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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