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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방정환은 왜 어린이날을 만들었을까? 그 시작은 어린 시절에 있었다

by onary 2025. 12. 9.

방정환은 왜 어린이날을 만들었을까?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책을 나누던 소년의 마음이, 훗날 아이들의 존엄을 지키는 사상이 되었다.
그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된 철학과 실천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1900년대 초 서울의 작은 한옥 마당에서 어린 방정환이 또래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 배움과 나눔 속에서 어린이 인권의 씨앗이 자라나는 장면

 

1899년 11월 9일, 서울 야주개(현 종로구 당주동)에서 태어난 소년. 호는 소파(小波). 32년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조선에 "어린이"라는 개념을 심고, 어린이날을 만들고, 아동문학의 길을 열었다.

1923년 5월 1일, 조선 최초의 어린이날.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라는 선언.

이것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한 사회의 의식을 바꾼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 혁명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가난한 집안의 한 소년이, 마을 아이들과 책을 나눠 읽으며 품었던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1. 책과 가난 사이에서 자란 소년, 방정환의 유년기

1899년 서울, 전통 유학자 집안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방정환.

그의 집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깊었지만, 경제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았다. 책은 귀했고, 배움은 특권이던 시절이었다.

방정환의 아버지 방경수는 가난한 선비였다. 한학을 공부했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못했고, 집안은 늘 어려웠다.

어머니 손병희의 딸 손용화는 독실한 천도교 신자였다. 방정환은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0년대 초 조선은 격변의 시기였다.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경술국치. 방정환이 자라는 동안 나라는 무너져갔다.

하지만 어린 방정환의 눈에는 또 다른 불평등이 보였다. 바로 어린이에 대한 차별이었다.

하지만 어린 방정환은 남들과 달랐다.

다섯 살 무렵부터 한문을 배우며 글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여덟 살이 되자 집 마당에 작은 책꽂이를 세우고 마을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었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이미 '배움은 나눔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하고 있었다.

당시 조선에서 "어린이"라는 개념은 없었다. "아해(兒孩)", "애자(孩子)", "아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아직 사람이 아닌 존재", "어른이 되기 전 단계"를 의미했다.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물이었고, 권리도 존엄도 없었다.

그 시절 어린이는 이름조차 없었다.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어른의 소유물"로 여겨졌던 시대.

그러나 방정환의 눈에는 그 현실이 낯설었다. 왜 아이들은 배우고 싶은 마음조차 허락받지 못하는가?

왜 '어린이'는 존재하지 않는가?

그의 어린 시절은 단순한 성장기가 아니었다. 불평등한 세상을 바라보는 감수성이 자라는 시간이었다.

 

보성전문학교, 그리고 천도교와의 만남

1917년, 방정환은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법과에 입학했다.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된 것은 천도교의 지원 덕분이었다.

천도교는 동학의 후신으로,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핵심으로 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이 사상은 방정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사람이 하늘이라면, 어린이도 하늘 아닌가? 이 깨달음이 그의 어린이 운동의 철학적 기반이 되었다.

1920년, 방정환은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어린이 운동 단체였다.

어린이들에게 교육과 문화 활동을 제공하고, 무엇보다 그들을 "인격체"로 대우했다.

이 시기 방정환은 이미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연극을 하고, 글을 쓰고, 동화를 번역했다.

그는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2. 일본 유학에서 깨달은 또 다른 현실, '어린이'가 없던 시대

1922년, 방정환은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 철학과에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서양 문물과 새로운 사상을 접하며 세상의 넓이를 깨달았다. 하지만 곧 충격을 받았다.

일본에서 방정환은 두 가지를 발견했다.

첫째, 서구의 발달한 아동문학과 아동 교육.

둘째, 일본의 아동 착취 현실.

일본은 서구의 아동문학을 번역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어린이들을 전쟁을 위한 도구로 키우고 있었다.

당시 일본의 아이들 역시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위한 인력으로 길러지고,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길러지는 존재'였다.

방정환은 그 현실에서 오히려 조선의 문제를 더 뚜렷이 보았다. 조선의 어린이들도 똑같이 억눌리고 있었다.

그때부터 그는 단어 하나를 되새겼다. '어린이도 하나의 사람이다.'

방정환은 일본 서점에서 아동문학잡지를 모았다.

특히 『赤い鳥(빨간 새)』라는 일본 아동문학잡지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는 조선에도 이런 잡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슴속에 '어린이'라는 철학적 단어가 처음 자리 잡은 순간이었다.

그는 일본의 서점에서 아동문학잡지와 그림책을 모으며 결심했다. "조선의 아이들에게도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주자."

그 결심은 이후 그가 조국으로 돌아와 펼친 문화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다.

 

3. 1923년 5월 1일, 조선 최초의 어린이날

1923년, 조선에 돌아온 방정환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그해 5월 1일, 조선 최초의 어린이날을 선포했다.

『동아일보』 1923년 5월 1일 자 기사: "오늘은 조선 소년운동협회가 정한 어린이날입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인격적으로 대접하여 주시오."

그날은 단순한 축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존재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린 선언이었다.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다."

어린이날 첫 행사는 천도교당에서 열렸다.

연극, 동화 구연, 노래, 게임.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모였고, 그들은 처음으로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섬기는 날, 아이들이 존중받는 날.

 

방정환이 발표한 "어린이날의 약속":

  1.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보아 주시오
  2.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되 굽어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3.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존댓말을 쓰시오
  4. 어린이를 책망하실 때에도 부드러이 타일러 주시오

그는 동료들과 함께 '색동회'를 만들어 어린이를 위한 문학과 교육 활동을 펼쳤다.

색동회는 1923년 3월 16일 창립되었다. 방정환, 마해송, 윤석중, 정순철 등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였다.

"색동"은 어린이의 아름다움과 다양성을 상징했다.

 

4. 『어린이』 잡지, 조선 어린이 문화의 탄생

1923년 3월, 방정환은 『어린이』 잡지를 창간했다. 이것은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 잡지였다.

『어린이』 창간호 표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어린이 여러분, 이제부터 여러분은 '어린이'입니다."

그는 늘 말보다 행동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 "어린이를 사랑하되, 보호하지 말고 존중하라." 이 한 문장은 지금까지도 교육계의 철학으로 남아 있다.

『어린이』 잡지는 혁명적이었다. 동화, 동시, 동요, 과학 지식, 세계 문화 소개. 무엇보다 어린이들이 직접 쓴 글과 그림을 실었다. 어린이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방정환은 직접 전국을 돌며 동화 구연을 했다. "라디오도 없던 시절, 소파의 동화 구연은 마법 같았다"는 증언이 남아 있다.

그는 목소리를 바꿔가며 등장인물을 연기했고,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가 만든 '어린이'라는 개념은 단순한 언어가 아니라, 사회의 의식을 바꾼 혁명이었다.

방정환이 번역하고 창작한 동화들:

  • 『사랑의 선물』 (안데르센 동화 번역)
  • 『형제별』 (자작 동화)
  • 『만년샤쓰』 (자작 동화)
  • 수많은 외국 명작 동화 번역

5. 짧았지만 깊었던 생애, 그리고 남겨진 사상

1931년 7월 23일, 방정환은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과로와 신장염이 원인이었다.

임종 직전 그가 남긴 마지막 말: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잠이 오지 않소."

짧은 인생이었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도 살아 있다.

방정환이 남긴 것:

  • "어린이"라는 단어와 개념
  • 어린이날 (현재 5월 5일, 1975년 국가 공휴일 지정)
  • 『어린이』 잡지 (1923-1949, 통권 122호)
  • 색동회 (한국 아동문학의 요람)
  • 수많은 번역 동화와 창작 동화
  • 어린이 인권 사상

그가 만든 어린이날은 국가 공휴일이 되었고, '어린이'라는 단어는 그가 세상에 남긴 선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아이들을 단지 귀여운 존재로 본 것이 아니라, 존엄을 가진 인간으로 본 최초의 사상가였다.

1957년, 방정환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아동문학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그의 어린 시절 가난과 차별의 경험은 그를 정의로운 인간으로 자라게 했다.

그가 어릴 적 느꼈던 불평등은 훗날 어린이 인권 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방정환이 꿈꿨던 세상은 단 하루의 축제가 아닌, 아이들이 매일 존중받는 나라였다.

그의 철학은 지금도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 결론: 그 모든 시작은, 한 소년의 질문이었다

방정환의 삶은 짧았지만, 그 철학은 오래 남았다. 그의 어린 시절, 책을 나누던 한 소년의 마음에서 시작된 생각이 이제는 한 사회의 가치가 되었다.

"어린이도 하나의 사람이다." 그가 남긴 이 한마디는 오늘도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아이들을 존중하고 있는가?"

마을 아이들과 책을 나누던 소년은 조선에 "어린이"라는 개념을 선물했고, 32년의 짧은 생애로 한 세기를 바꾸었다.

이것이 방정환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작은 질문이 만든 위대한 혁명이다.

매년 5월 5일, 우리가 어린이날을 기념할 때, 그것은 한 소년이 품었던 꿈이 현실이 된 날을 축하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어린이』 잡지 (1923-1949)
  • 『동아일보』, 『조선일보』 관련 기사 (1920-1931)
  • 방정환, 『사랑의 선물』, 개벽사, 1922
  • 천도교 소년회 관련 문서

참고 서적

  • 이재철, 『방정환 연구』, 청년사, 1980
  • 염희경, 『소파 방정환 평전』, 학인당, 2014
  • 한국아동문학회, 『한국 아동문학의 이해』, 청동거울, 1997
  • 서정숙, 『소파 방정환과 근대 아동문학』, 박이정, 2006
  • 원종찬, 『방정환 연구』, 창비, 2011

학술 논문

  • 이재철, "방정환의 아동관과 아동문학", 『아동문학연구』
  • 원종찬, "방정환과 천도교 소년운동", 『한국아동문학연구』
  • 염희경, "방정환의 생애와 업적", 『아동청소년문학연구』
  • 김경중, "『어린이』 잡지의 역사적 의의", 『한국문학연구』

관련 기관

  • 방정환재단
  • 한국어린이문학관
  • 한국아동문학회
  • 방정환문학상위원회

참고 사이트

  • 방정환재단 
  •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본 글은 방정환의 저작, 『어린이』 잡지, 당대 신문 기사,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방정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구체적 기록은 제한적이며, 그의 활동과 사상, 주변인들의 증언을 종합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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