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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허준의 어린시절, 고통을 먼저 본 소년의 기록

by onary 2025. 11. 18.

이 소년은 어머니가 죽어가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의원을 부를 돈이 없었고, 약을 구할 방법도 없었다. 그로부터 50년 후, 그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이라는 불멸의 의서를 완성했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전 세계에서 읽히는 책.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조선의 자랑. 이것은 고통을 먼저 본 소년이, 고통을 치료하는 의원이 되고, 마침내 조선 의학의 역사를 다시 쓴 이야기다.

허준의 어린시절, 고통을 먼저 본 소년의 기록, 어린 허준이 병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

 

1. "너는 서자다" - 태어나면서 정해진 한계

"준아, 네가 자라면 알게 될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단다."

어머니는 어린 허준을 안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녀는 양반가의 첩이었다. 법적으로 "양반의 아내"가 아니었다.

조선의 신분제는 철저했다.

  • 양반의 적자(嫡子) → 과거 응시 가능, 관직 진출 가능
  • 양반의 서자(庶子) → 과거 응시 불가, 관직 제한
  • 양반의 얼자(孼子, 천민 소생) → 더욱 심한 차별

허준은 서자였다. 정확히는 얼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어린 허준은 이 차별을 몸으로 느꼈다. 다섯 살 무렵, 아버지의 본가에 갔다. 적실의 아이들이 한복을 입고 놀고 있었다. 허준은 그들과 함께 놀고 싶었다.

"저기, 나도 같이... 너는 안 돼. 너는 서자잖아."

그 말에 허준은 멈춰 섰다. '서자가 뭐지? 왜 나는 안 되는 걸까?'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물었다.

"엄마, 서자가 뭐예요?" 어머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아들을 안고 눈물만 흘렸다.

『조선왕조실록』과 『동의보감』 관련 기록: "허준은 서출(庶出)로 태어나 의업에 종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당시 양반의 서자들은 의원, 역관, 음양가 등 기술직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았다.

 

2. 병든 사람들, 그리고 무력한 나

1545년, 허준 6세 무렵. 을사사화가 일어났다. 정치적 숙청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한양은 공포에 휩싸였다. 하지만 어린 허준의 기억에는 다른 것이 남았다. 전염병. 사화의 혼란 속에서 역병이 돌았다. 두창(천연두), 학질(말라리아), 이질. 거리에는 병든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어머니는 허준의 손을 꼭 잡았다.

"준아, 보지 마라. 눈을 감아라."

하지만 허준은 봤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사람들. 도움을 청하지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들. 길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엄마, 저 사람들은 왜 아파요?" "병이 들어서란다." "병은 왜 들어요?" "그건... 엄마도 모르겠구나."

그날 밤, 허준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계속 그 얼굴들이 떠올랐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들.

'병은 왜 생기는 걸까?' '어떻게 하면 낫게 할 수 있을까?'

6세 소년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3. 어머니의 병, 그리고 속절없는 이별

1548년, 허준 9세. 악몽이 현실이 되었다.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처음에는 기침이었다. "괜찮아, 준아. 감기일 뿐이야."

하지만 기침은 멈추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자 피를 토했다. 폐병(폐결핵)이었다. 당시 폐결핵은 불치병이었다. 양반가에서도 치료하기 어려웠고, 가난한 집에서는 죽음을 기다릴 뿐이었다. 허준은 어머니 곁을 지켰다. 점점 말라가는 어머니. 점점 차가워지는 손.

"엄마, 의원을 불러요."

"준아... 우리는 돈이 없단다."

"그럼 약은요?"

"약도... 살 수 없구나."

허준은 무력했다. 밤마다 어머니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내가 의원이었다면...내가 약을 만들 수 있었다면... 어머니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어느 날 새벽, 어머니의 숨이 멎었다. 허준은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잡고 울었다. 소리 없이, 길게. 그리고 맹세했다.

"어머니, 저는 반드시 의원이 되겠습니다. 가난해서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9세 소년의 맹세. 이것이 『동의보감』의 시작이었다. 『동의보감』 서문에 허준은 이렇게 썼다: "의술은 인명을 살리는 것이다.

귀천을 따지지 않고, 빈부를 가리지 않으며, 오직 생명을 귀하게 여긴다."

 

4. 홀로 남은 소년, 세상을 배우다

어머니가 죽은 후, 허준은 홀로 남았다. 아버지는 본가로 돌아갔다. 법적으로 허준에게 재산을 물려줄 수 없었다. 허준은 친척집을 전전했다. 10대의 허준은 떠돌이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는 관찰했다. 사람들의 병을 봤다. 마을 노인이 허리를 다쳐 신음할 때, 침을 놓는 의원을 지켜봤다. 동네 아이가 열병으로 앓을 때, 어떤 약재를 달이는지 기억했다. 임신한 여인이 배를 움켜쥐고 아파할 때, 산파가 어떻게 돕는지 관찰했다. 허준은 모든 것을 기억했다.

  • 어떤 증상에 어떤 약재를 쓰는지
  • 침은 어디에 놓는지
  • 맥은 어떻게 짚는지

그에게는 책도, 스승도 없었다. 하지만 세상이 스승이었다. 고통받는 사람들이 교과서였다.

 

5. 의학과의 운명적 만남 - 유희춘과 류의태

1550년대, 허준 10대 후반. 전환점이 찾아왔다. 유희춘(柳希春)을 만난 것이다. 유희춘은 선비이자 관료였다. 그는 허준의 재능을 알아봤다.

"이 아이는 총명하다. 의학을 가르쳐보면 어떨까?"

유희춘은 허준을 당대 명의 '류의태(柳義泰)'에게 보냈다. 류의태는 엄격한 스승이었다. 첫날, 류의태는 허준에게 물었다.

"왜 의원이 되려 하는가?"

허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제 어머니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합니다."

류의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가르쳐주겠다."

류의태의 가르침은 가혹했다.

새벽 4시 기상.

  • 『황제내경』 암송
  • 약재 300종 이름과 효능 외우기
  • 맥진법 연습

오전.

  • 실제 환자 진료 참관
  • 침 놓는 법 연습
  • 약 달이는 법 실습

오후.

  • 의서 필사
  • 증상별 처방 공부
  • 해부학 기초

밤.

  • 복습과 암기
  • 새로운 의서 연구

하루 18시간 공부. 허준은 견뎠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눈이 침침해지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도.

"스승님, 괜찮습니다. 더 배우고 싶습니다."

류의태는 제자를 시험했다.

"이 환자의 병은 무엇인가?"

"맥이 빠르고 얕으며, 혀가 붉습니다. 열증(熱症)입니다."

"처방은?"

"백호탕(白虎湯)으로 열을 내리고, 맥문동으로 진액을 보충해야 합니다."

"이유는?"

"열이 진액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류의태는 감탄했다. '3년 배운 제자가 10년 배운 의원보다 낫구나.'

 

6. 서자에서 어의로, 그리고 『동의보감』으로

1570년대, 허준 30대. 드디어 내의원(內醫院)에 들어갔다. 서자 출신으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선조는 허준의 실력을 인정했다. "신분이 낮아도 실력이 있으면 쓸 만하다."

허준은 왕실 의원이 되었다. 하지만 잊지 않았다. 9세 때의 맹세를. 어머니의 차가운 손을. 가난해서 죽어간 사람들을.

1596년, 선조의 명령. "허준, 우리나라의 의서를 집대성하라."

허준은 15년 동안 『동의보감』을 저술했다.

『동의보감』의 특징:

  • 총 25권 25 책
  • 한국, 중국, 일본의 의학 지식 집대성
  • 일반 백성도 이해할 수 있게 쉽게 서술
  • 자급자족 가능한 약재 중심
  • 예방 의학 강조

1610년, 완성. 허준은 책을 들고 눈물을 흘렸다. 71세의 노인이 된 허준.

"어머니... 제가 해냈습니다."

『동의보감』은 조선을, 동아시아를, 그리고 세계를 바꿨다.

1615년, 허준은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살아남았다.

  • 조선시대 내내 의학 교과서
  • 일본, 중국으로 전파
  • 현대 한의학의 근간
  •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는 책.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어, 여전히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고 있다.

 

🌸 결론: 고통을 먼저 본 소년이 고통을 치료하다

허준의 어린 시절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서자라는 신분. 가난. 어머니의 죽음. 세상의 차별. 하지만 그는 고통을 원망하지 않았다. 대신 고통을 이해했다. 그리고 고통을 치료하는 법을 배웠다. 9세에 어머니를 잃은 소년은 76세에 동의보감을 완성한 대의(大醫)가 되었다. 그가 남긴 것은 책 한 권이 아니었다.

"의술은 인명을 살리는 것이다. 귀천을 따지지 않는다"는 정신이었다. 이것이 허준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고통이 만든 불멸의 유산이다. 어머니를 살리지 못한 9세 소년의 맹세가, 400년 동안 수백만 명의 생명을 구했다. 이것이 허준의 어린 시절이 남긴 기록이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허준, 『동의보감(東醫寶鑑)』, 1610
  • 『조선왕조실록』 - 선조실록, 광해군일기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허준 관련 기록
  • 유희춘, 『미암일기(眉巖日記)』

참고 서적

  • 신동원,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 역사비평사, 2004
  • 김호,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들녘, 2000
  • 안상우, 『허준 평전』, 들녘, 2001
  • 이현숙, 『조선의 명의들』, 역사의아침, 2007
  • 신동원, 『조선사람의 생로병사』, 한겨레출판, 1999

학술 논문

  • 김남일, "허준의 생애와 동의보감", 『의사학』
  • 신동원, "동의보감의 성립과 그 의의", 『한국과학사학회지』
  • 여인석, "허준과 조선시대 의학", 『대한의사학회지』
  • 안상우, "동의보감의 편찬 배경과 체계", 『한국의사학회지』

관련 기관

  • 한국한의학연구원
  • 국립중앙도서관 (동의보감 원본 소장)
  • 한국한의학박물관
  •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참고 사이트

  • 한국한의학연구원  
  • 국립중앙도서관 
  •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의보감 디지털 아카이브

  •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컬렉션
  • 한국고전번역원 한국고전종합DB

※ 본 글은 『동의보감』, 『조선왕조실록』, 『미암일기』 등의 사료와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허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며, 당시 서자의 사회적 지위, 의학 교육 과정, 그의 행적을 종합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일화는 여러 전기와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내용을 바탕으로 했으나, 구체적인 대화는 문학적 재구성임을 밝힙니다. 허준이 서자 또는 얼자 출신이라는 것, 류의태에게 배웠다는 것, 동의보감을 저술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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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의보감』의 위대함을 다시 생각해보세요
  • 고통을 이해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임을 기억하세요
  • 신분과 환경을 극복한 허준의 의지를 배워보세요
  • 한국 전통 의학의 가치를 재발견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