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1년, 개경. 11세 소년. 고려 충숙왕의 둘째 아들이었지만, 왕위 계승 서열에서는 밀려나 있었고, 원나라의 요구로 인질로 가야 했다. 왕자였지만 볼모였고, 고려인이었지만 원나라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이 소년은 원나라의 힘이 무엇인지, 고려가 왜 약한지, 어떻게 해야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는지를 그곳에서 배웠다. 이것은 원나라 인질로 보내진 왕자가, 그 굴욕을 딛고 고려 개혁의 기치를 든 이야기다.

1. "둘째 왕자는 외로웠다" - 8세, 궁궐에서의 관찰
1338년경, 전 8세. 개경 궁궐. 큰형 충혜왕은 이미 세자였고, 모든 관심은 큰형에게 쏠려 있었다. 둘째인 전은 늘 구석에서 지켜봤다.
어느 날, 원나라 사신이 왔다. 궁궐 전체가 긴장했다. 신하들이 사신 앞에서 무릎을 꿇었고, 아버지 충숙왕도 고개를 숙였다. 전은 그 모습을 멀리서 봤다.
'왜 우리 아버지가 저렇게 고개를 숙이시지?' 사신이 떠난 후, 전은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버지, 왜 원나라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셔야 하나요?" 충숙왕이 한숨을 쉬었다.
"전아, 우리는 약하기 때문이다."
"약하다는 게 뭐예요?"
"힘이 없다는 것이다. 군사도 적고, 땅도 작고, 원나라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럼 강해지면 안 되나요?" 아버지가 쓸쓸히 웃었다.
"강해지고 싶지만... 쉽지 않구나."
8세 전은 그날 결심했다. '나는 커서 고려를 강하게 만들 거야.'
1340년경, 전 10세.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대나무, 매화, 학을 그렸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전은 그림으로 외로움을 달랬다. 하지만 그림만 그린 것은 아니었다. 궁궐 안을 돌아다니며 관찰했다. 권문세족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원나라 출신 관리들이 얼마나 횡포를 부리는지, 백성들이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10세 소년의 눈에 모든 것이 담겼다.
'고려는 병들어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2. 1341년, 11세 - "인질로 떠나는 날"
1341년 가을, 전 11세. 원나라에서 사신이 또 왔다. 이번에는 특별한 요구를 가지고.
"고려 왕자를 인질로 보내시오." 궁궐이 발칵 뒤집혔다. 큰아들은 보낼 수 없었다. 세자였기 때문이다. 결국 둘째 전이 선택되었다.
떠나기 전날 밤. 전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방문이 열렸다. 아버지 충숙왕이 들어왔다. 아버지의 눈이 붉었다.
"전아..."
"아버지."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 충숙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아, 미안하다. 아버지가 힘이 없어서... 네가 이런 고생을 해야 한다."
"괜찮아요, 아버지."
"괜찮지 않다. 11살 아이를 타국에 보내는 것이 어찌 괜찮을 수 있겠느냐."
전은 눈물을 참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 원나라에 가서 배울게요."
"배운다고?"
"네. 원나라가 왜 강한지, 어떻게 해야 고려도 강해질 수 있는지... 배워올게요."
충숙왕은 어린 아들을 안아줬다.
"고려를 잊지 마라. 네가 고려 왕자라는 것을 잊지 마라."
"네, 아버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전은 개경을 떠났다. 11세 소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여정. 말을 타고 북쪽으로 가면서, 전은 뒤를 돌아봤다.
개경의 궁궐이 점점 작아졌다. 눈물이 났지만, 참았다.
'나는 고려 왕자다. 울면 안 된다.' 그렇게 전은 원나라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로 향했다.
3. 원나라에서의 10년 - "인질이지만 배우는 자"
1341년 겨울, 대도 도착. 원나라 궁궐. 고려 궁궐보다 몇 배는 컸다. 전은 작은 방 하나를 배정받았다. 화려한 장식이 있었지만, 감옥 같았다. 첫날밤, 전은 창문을 열고 서쪽을 봤다. 저 멀리, 저 너머에 고려가 있었다.
'언젠가 돌아갈 거야.'
1342년경, 전 12세. 원나라 귀족 자제들과 함께 공부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을 무시했다.
"고려 왕자? 인질 주제에."
어느 날, 몽골 귀족 아이가 전을 놀렸다.
"너희 고려는 우리 원나라의 개야. 개의 왕자가 뭐가 대단하다고."
전은 주먹을 쥐었다. 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지금 때리면... 고려가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전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몽골 아이가 비웃었다.
"역시 개구나."
그날 밤, 전은 방에서 울었다.
'굴욕스럽다. 너무 굴욕스럽다.' 하지만 울고 나서, 전은 결심했다.
'지금은 참는다. 하지만 언젠가... 언젠가 고려를 강하게 만들어서, 다시는 이런 굴욕을 당하지 않게 만들겠다.'
12세 소년의 다짐이었다.
1344년경, 전 14세. 원나라 제도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몽골어를 익혔고, 원나라 역사를 배웠으며, 관료 제도를 연구했다.
선생님이 물었다.
"전, 너는 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느냐?" 전이 대답했다.
"배우고 싶습니다. 원나라가 왜 강한지 알고 싶습니다."
"왜 알고 싶으냐?"
"언젠가... 고려도 강하게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선생님이 전을 유심히 봤다. '이 소년은... 보통이 아니다.'
1346년경, 전 16세. 밤마다 고려말로 일기를 썼다. 원나라 사람들이 읽을 수 없으니 안전했다.
'오늘 원나라 조정 회의를 참관했다. 황제가 어떻게 신하들을 통제하는지 봤다. 고려로 돌아가면 이 방법을 써야겠다.'
'오늘 몽골 장군과 이야기했다. 군사 제도에 대해 배웠다. 고려 군대를 강화할 방법을 생각해 봐야겠다.'
전은 인질이었지만, 배우는 자였다. 굴욕 속에서도 준비하고 있었다.
4. 1349년, 노국공주와의 만남 - "원나라 땅에서 만난 위로"
1349년, 전 19세. 원나라 공주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와 결혼이 결정되었다. 정략결혼. 전은 처음에 거부감이 들었다.
'원나라 공주라니...'
하지만 노국공주를 만난 순간, 전은 놀랐다. 공주는 달랐다. 교만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하고 사려 깊었다. 첫 만남에서 공주가 말했다.
"왕자님, 고려가 그리우시죠?" 전이 놀라서 공주를 봤다.
"어떻게..."
"보면 알아요. 왕자님 눈에 늘 그리움이 담겨 있어요."
전은 고개를 숙였다.
"... 네. 그립습니다. 매일 밤 꿈에 고려가 나옵니다."
공주가 전의 손을 잡았다.
"언젠가 돌아가실 거예요. 저도 함께 갈게요." 전은 처음으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원나라 땅에서 만난 유일한 위로였다.
1350년경. 노국공주와 함께 있으면 고려가 덜 그리웠다. 공주는 전이 고려 시를 읊는 것을 듣고, 고려 음악을 듣고, 고려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어느 날 전이 그림을 그렸다. 개경의 풍경이었다. 노국공주가 물었다.
"이게 고려인가요?"
"네. 제 고향입니다."
"언젠가 저도 보고 싶어요."
"꼭 보여드릴게요. 언젠가 함께 가요."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 정략결혼으로 시작했지만, 진짜 사랑이 되었다.
5. 1351년, 왕위에 오르다 - "이제 고려를 바로 세우겠다"
1351년, 전 21세. 예상치 못한 소식이 왔다. 큰형 충혜왕 계열이 폐위되고, 전이 고려 왕으로 추대되었다. 10년 만에 고려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전은 노국공주에게 말했다.
"공주님, 고려로 갑시다."
"네, 왕자님. 아니, 이제 전하라고 불러야겠네요."
"고려에 가면... 쉽지 않을 겁니다. 개혁을 해야 합니다."
"함께할게요. 전하가 가시는 곳이라면 어디든."
1351년 가을, 고려 귀국. 10년 만에 본 개경. 하지만 기쁨보다 슬픔이 컸다. 고려는 더 병들어 있었다. 원나라 간섭이 심했고, 권문세족이 백성을 착취했으며, 땅은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공민왕으로 즉위한 전은 결심했다.
'11세에 인질로 끌려갔던 그 굴욕을 잃지 않겠다. 10년간 준비한 것을 이제 실천하겠다. 고려를 바로 세우겠다.'
공민왕의 개혁이 시작되었다.
첫째, 반원 자주 정책.
원나라의 내정간섭 기구인 정동행성을 폐지했고, 원나라 연호 사용을 중단했으며,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땅을 되찾았다.
둘째, 권문세족 견제.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불법으로 빼앗은 토지를 환수했고, 권문세족의 사병을 해체했으며, 신진사대부를 등용했다.
신하들이 반대했다.
"전하, 원나라가 반발할 것입니다!"
"권문세족이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공민왕이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11세에 인질로 끌려갔소. 10년을 타국에서 굴욕을 당했소. 그 굴욕을 다시는 고려가 당하지 않게 하려면, 지금 개혁해야 하오."
하지만 개혁은 쉽지 않았다. 원나라는 압박했고, 권문세족은 저항했으며, 보수파는 공민왕을 견제했다.
1365년, 사랑하는 노국공주가 출산 중 세상을 떠났다. 공민왕은 무너졌다.
"공주님... 공주님..." 유일한 위로였던 사람이 떠났다.
1374년, 공민왕 44세. 환관 최만생 등에게 시해당했다. 개혁을 완성하지 못한 채. 하지만 공민왕이 시작한 반원 자주의 정신, 권문세족을 견제한 개혁 정신은 이성계와 정도전에게 이어졌고, 조선 건국의 기반이 되었다.
🌸 결론: 굴욕을 딛고 개혁의 기치를 든 왕
공민왕의 어린 시절은 굴욕과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둘째 왕자로 태어나 늘 구석에 있었고, 8세에 원나라의 횡포를 목격했으며, 11세에 인질로 끌려가 10년을 타국에서 보냈다.
"왕자이지만 인질입니다." 11세 소년이 들었던 말. 하지만 공민왕은 그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원나라 제도를 배웠고, 굴욕 속에서도 준비했으며, 고려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21세에 왕위에 올라 즉시 개혁을 시작했다. 반원 자주 정책을 펼쳤고, 권문세족을 견제했으며, 신진사대부를 등용했다. 비록 44세에 시해당해 개혁을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가 시작한 개혁 정신은 역사에 남았다.
공민왕이 남긴 것은 정책만이 아니었다.
"굴욕을 딛고 일어서라. 타국에서도 조국을 잊지 마라. 준비하는 자가 기회를 잡는다."
이것이 공민왕이 보여준 삶이었다. 11세에 인질로 끌려갔지만, 21세에 왕이 되어 고려 개혁의 기치를 들었고, 44세에 순국했지만 그 정신은 조선으로 이어졌다. 6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원나라 인질에서 반원 자주의 개혁왕으로. 굴욕을 딛고 일어선 공민왕으로. 이것이 공민왕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굴욕이 만든 개혁군주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고려사(高麗史)』 권39~41, 공민왕 세가 - 한국고전번역원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26~28 - 한국고전번역원
- 『원사(元史)』 고려전
참고 서적
- 이익주, 『공민왕: 몽골 제국에 맞선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역사비평사, 2008
- 민현구, 『고려 정치사 연구』, 일조각, 2004
- 김당택, 『고려 후기 정치사 연구』, 한국학술정보, 2006
- 박용운,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년사, 2005
학술 논문
- 민현구, "공민왕의 개혁정치와 그 성격", 『한국사연구』
- 이익주, "공민왕대 반원정책의 전개와 한계", 『역사학보』
- 김당택, "공민왕의 왕권강화책 연구", 『한국사학보』
- 도현철,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역사와 현실』
관련 유적
- 현정릉(玄正陵) - 개성 (공민왕과 노국대장공주 합장묘, 북한 소재)
- 공민왕 영정 - 국립중앙박물관
관련 기관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고전번역원
- 고려대학교 한국사연구소
참고 사이트
- 한국고전번역원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본 글은 『고려사』, 『고려사절요』와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공민왕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제한적이며, 원나라 인질 생활, 노국공주와의 관계, 개혁 정책 등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출생(1330), 원나라 인질(1341), 노국공주 결혼(1349), 즉위(1351), 반원 개혁, 노국공주 사망(1365), 시해(1374) 등은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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