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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광개토대왕의 어린 시절, "고구려는 작은 나라야"라는 무시를 이기고 동아시아 최강국을 건설하다

by onary 2025. 11. 24.

주변국의 무시를 받던 왕자에서 대정복 군주로

"고구려? 그 작은 나라?" 백제 사신이 비웃었다.

375년경, 고구려 국내성(國內城, 지금의 중국 지안).

5세 소년 담덕(談德, 훗날 광개토대왕)은 그 말을 듣고 주먹을 쥐었다.

백제 사신단이 고구려 궁궐을 방문했을 때였다. 사신들은 고구려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북쪽 변방 나라 주제에." "백제가 얼마나 강한지 모르나 보지?"

어린 담덕은 아버지 고국양왕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아버지는 참고 있었다. 하지만 담덕은 분했다.

'왜 우리가 무시당해야 하지?'

그리고 30년 후, 이 소년은 왕이 되어 백제를 굴복시켰고, 신라를 구원했으며, 만주 벌판을 호령하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이것은 "작은 나라"라 무시당했던 왕자가, 동아시아 최강국을 만든 이야기다.

 

고구려 궁전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미래의 정복을 계획하는 15세 광개토대왕(담덕). 어린 시절부터 고구려를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결심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

 

1. "할아버지는 전쟁터에서 돌아가셨어" - 5세, 치욕의 기억

375년, 담덕 5세.

할아버지 고국원왕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담덕아, 할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아느냐?"

"전쟁에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그렇다. 백제와의 전쟁에서 화살을 맞고 돌아가셨단다."

371년의 일이었다. 백제 근초고왕이 3만 대군을 이끌고 평양성을 공격했다.

고국원왕이 직접 나가 싸웠지만, 백제군 화살에 맞아 전사했다.

고구려 왕이 전장에서 죽은 것이다. 5세 담덕은 물었다.

"왜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야 했어요?"

"우리가... 약했기 때문이란다."

"약하다는 게 뭐예요?"

"힘이 없다는 것이다. 군사도 부족하고, 땅도 작고, 백제가 우리를 우습게 본단다."

담덕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리가 약하다고? 고구려가?'

며칠 후, 또 백제 사신이 왔다. 이번에는 더 건방졌다.

"고구려는 이제 우리 백제를 따라야 할 것이오. 평양성 전투를 잊지 마시오."

담덕의 아버지 고국양왕은 참고 고개를 숙였다. 담덕은 그 모습을 봤다.

'아버지가... 고개를 숙이신다.' 5세 소년은 그날 밤 혼자 울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고개를 숙이고...' '나는 커서... 이런 일이 없게 만들 거야.'

 

2. 10대, "나는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겠다" - 훈련과 결심

380년경, 담덕 10세.

무예 훈련을 시작했다. 활쏘기, 말타기, 검술. 고구려 왕자는 어릴 때부터 무인으로 자라야 했다.

하지만 담덕은 남달랐다. 다른 왕자들보다 더 열심히 훈련했다. 새벽에 일어나 활을 쏘고, 말을 타고, 밤까지 연습했다.

스승이 물었다.

"담덕 왕자,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고 싶어서요."

"강하게?"

"네. 다시는 백제에게 무시당하지 않게요. 다시는 할아버지 같은 일이 없게요."

스승이 담덕을 유심히 봤다. '이 아이는... 보통이 아니다.'

385년경, 담덕 15세.

지도를 펼쳐놓고 공부했다. 고구려의 영토, 백제의 영토, 신라의 영토.

그리고 북쪽의 거란, 동쪽의 말갈, 서쪽의 후연. 담덕은 생각했다.

'고구려는 정말 작구나.'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지금은 작아도... 내가 왕이 되면 크게 만들 거야.'

어느 날 밤, 아버지 고국양왕이 담덕을 불렀다.

"담덕아, 너는 나중에 왕이 될 것이다."

"네, 아버지."

"왕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

담덕이 주저 없이 대답했다.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고 싶습니다. 백제를 이기고, 신라를 지키고, 북쪽 땅을 넓히고 싶습니다."

고국양왕이 놀랐다.

"큰 꿈을 가졌구나."

"네. 할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고구려를 동아시아 최강국으로 만들겠습니다."

고국양왕은 아들을 안아줬다.

"그래... 네가 하거라. 아버지는 믿는다."

15세 담덕의 결심이었다.

 

3. 18세, 첫 전투 - "나는 두렵지 않다"

388년, 담덕 18세.

첫 전투에 나갔다. 북쪽 거란족이 국경을 침범했다. 담덕이 자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아버지가 걱정했다.

"아직 어리지 않느냐?"

"18세면 충분합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전장.

거란 기병이 몰려왔다. 담덕은 말을 타고 있었다. 두려웠다. 하지만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할아버지는 전장에서 돌아가셨어.' '나는... 나는 이겨야 해.'

담덕이 활을 쏘았다. 화살이 날아가 거란 병사를 맞췄다.

담덕은 용기를 얻었다. 계속 활을 쏘고, 말을 몰고, 싸웠다.

전투가 끝났다. 첫 승리.

고구려군이 이겼다. 담덕도 살아남았다. 아니,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이긴 것이다.

장군이 담덕에게 존경을 표했다.

"왕자님, 훌륭하게 잘 싸우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입니다."

"시작이요?"

"네. 저는 앞으로 더 많이 싸우고, 더 많이 이길 겁니다. 고구려를 위해서."

18세 청년의 포부였다.

 

4. 391년, 왕위에 오르다 - "이제 내 차례다"

391년, 담덕 21세.

아버지 고국양왕이 세상을 떠났다. 담덕이 왕위에 올랐다.

광개토대왕.

정식 시호는 "광개토경평안호태왕(廣開土境平安好太王)".

"땅을 넓게 열어 편안하게 한 위대한 왕"이라는 뜻이었다.

즉위하자마자 담덕은 결심했다.

'5세 때의 굴욕을 잊지 않았다.' '10세 때의 결심을 기억한다.' '18세 때의 첫 승리를 발판으로 삼는다.'

'이제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 차례다.'

첫 정벌: 백제.

392년, 광개토대왕은 백제를 공격했다. 할아버지 고국원왕을 죽인 백제. 5세 때 무시당했던 백제.

광개토대왕은 10개 성을 함락시켰다.

"이것은 시작이다."

신라 구원.

400년, 왜군이 신라를 공격했다. 신라가 고구려에 도움을 청했다. 광개토대왕이 5만 군사를 보냈다.

왜군을 격퇴하고 신라를 구했다. 신라는 고구려의 동맹이 되었다.

북방 정벌.

광개토대왕은 북쪽으로 눈을 돌렸다. 거란, 말갈, 동부여. 하나씩 정복했다.

만주 벌판이 고구려 땅이 되었다.

404년, 후연 정벌.

서쪽의 강국 후연까지 공격했다. 요동 지역을 장악했다. 고구려는 동아시아 최강국이 되었다.

 

5. 413년, 광개토대왕 승하 - "땅을 넓게 열었다"

413년, 광개토대왕 39세.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재위 22년.

그가 넓힌 땅:

남쪽으로 백제를 압박하고, 동쪽으로 신라를 보호하고, 북쪽으로 만주를 장악하고, 서쪽으로 요동을 차지했다.

영토가 5배 이상 확장되었다.

414년, 아들 장수왕이 비석을 세웠다.

광개토대왕릉비.

높이 6.39미터의 거대한 비석.

1,775자의 글자가 새겨졌다.

"광개토경평안호태왕"

땅을 넓게 열어 편안하게 한 위대한 왕.

5세에 "작은 나라"라 무시당했던 소년이, 39세에 동아시아 최강국을 만든 왕이 되었다.

 

🌸 결론: "작은 나라"에서 대제국으로

광개토대왕의 어린 시절은 굴욕으로 시작되었다.

5세에 백제 사신에게 무시당했고,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전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아버지가 고개 숙이는 모습을 봤다.

"고구려는 작은 나라야."

5세 소년이 들었던 말. 하지만 담덕은 포기하지 않았다.

10세에 훈련을 시작했고, 15세에 "고구려를 강하게 만들겠다"라고 결심했으며, 18세에 첫 전투에서 이겼다.

그리고 21세에 왕이 되어 22년간 정복 전쟁을 이어갔다.

백제를 압박했고, 신라를 구했으며, 만주를 장악했고, 요동을 차지했다.

영토를 5배 이상 넓혔다.

"작은 나라"가 대제국이 되었다.

광개토대왕이 남긴 것은 영토만이 아니었다.

"굴욕을 딛고 일어서라." "작다는 말에 좌절하지 마라." "꿈은 실천으로 이룰 수 있다."

이것이 광개토대왕이 보여준 삶이었다.

5세에 "작은 나라"라는 무시를 들었지만, 10세부터 준비했고, 21세에 왕이 되어 정복을 시작했으며, 39세에 동아시아 최강국을 만들고 세상을 떠났다.

비록 39세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 생은 고구려 역사상 가장 빛나는 시대였다.

1,600년이 지난 지금도, 광개토대왕릉비는 중국 지안에 서 있다.

그리고 우리는 기억한다.

"작은 나라"에서 대제국으로. 무시당한 왕자에서 대정복 군주로.

이것이 광개토대왕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굴욕이 만든 대제국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광개토대왕릉비문 - 414년 건립
  • 『삼국사기(三國史記)』 권18, 고구려본기 - 한국고전번역원
  • 『삼국유사(三國遺事)』

참고 서적

  • 임기환, 『광개토왕릉비의 재발견』, 푸른 역사, 2006
  • 서영수, 『광개토왕비문 연구』, 서경문화사, 2011
  • 김현숙, 『고구려의 영역 지배 방식 연구』, 모시는 사람들, 2005
  • 여호규, 『광개토왕릉비 연구 100년』, 동북아역사재단, 2012

학술 논문

  • 임기환, "광개토왕의 정복 활동과 고구려의 영역", 『한국고대사연구』
  • 서영수, "광개토왕비문의 역사적 의의", 『역사학보』
  • 김현숙, "광개토왕대 고구려의 대외 관계", 『한국사연구』
  • 여호규, "광개토왕의 영토 확장 전략", 『동북아역사논총』

관련 유적

  • 광개토대왕릉 - 중국 지린성 지안시
  • 광개토대왕릉비 - 중국 지린성 지안시
  • 국내성 유적 - 중국 지린성 지안시

관련 기관

  • 동북아역사재단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고대사학회
  • 고구려연구재단

※ 본 글은 광개토대왕릉비문, 『삼국사기』와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광개토대왕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며, 고국원왕 전사(371), 당시 고구려의 국제 관계,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391-413) 등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