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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최무선의 어린 시절, 화약을 꿈꾸던 소년의 눈빛

by onary 2025. 11. 23.

1. 서론: 작은 궁금증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되다

누군가는 전쟁을 두려워했고, 또 누군가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무기를 만들었다. 고려 말기, 나라가 외적의 침입에 끊임없이 시달리던 시절, 화약이라는 생소한 기술을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열쇠로 활용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최무선이다. 오늘날 최무선은 고려 최초로 화약 무기를 제작한 과학자로 알려졌지만, 그가 단지 기술자였던 것은 아니다. 그는 ‘왜 우리는 지키기만 하고 공격은 못 하는가?’라는 아주 단순한 질문에서 출발해, 실전에서 활용 가능한 화포를 만들어낸 전략적 사고의 선구자였다. 이런 발상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었다. 그의 유년기에는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눈빛과 호기심, 그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냉철함이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최무선의 어린 시절에 집중하여,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났고, 어떤 일화들이 그의 사고방식과 선택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짚어보려고 한다. 단순히 기술 하나를 배워 무기를 만든 것이 아닌, 사회적 흐름과 백성의 고통을 어릴 적부터 깊이 받아들였던 한 소년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창의성과 책임감이 무엇인지를 되새기게 한다.

 

2. 두 눈으로 직접 본 현실, 외적의 공포와 민중의 고통

최무선은 고려 말기의 혼란기인 1325년경 경상도 언양에서 태어났다. 당시 그의 고향은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해안 지역과 가깝고, 민심은 불안정했으며, 정부의 대응은 미약했다. 최무선은 아주 어린 나이부터 마을 사람들의 피난 행렬, 불에 타는 가옥, 울부짖는 어른들의 얼굴을 직접 보며 자라났다. 다른 아이들이 놀이에 몰두할 때, 그는 왜 어른들이 계속 두려움에 떠는지, 나라는 왜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일곱 살 무렵, 그의 집 근처 마을이 왜구의 습격을 받아 불탔고, 살아남은 이웃이 그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그 노파는 최무선에게 “우리는 항상 도망만 다닌다. 지킬 힘이 없으니 이렇게 사는 수밖에 없단다.”라고 말했다. 이 짧은 말이 어린 최무선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그는 그날 밤 어머니에게 “왜 우리는 칼이 있어도 멀리 있는 적은 못 막아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말없이 아이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최무선은 세상의 작동 방식을 어린 눈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에게 전쟁은 머나먼 나라 이야기나 영웅담이 아니었고, 늘 일상처럼 옆에서 벌어지는 사건이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무력으로 나라를 지킬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품게 되었고, 이는 그가 성장하여 화약 개발에 몰두하게 되는 내면의 동기가 되었다.

최무선의 어린 시절, 화약을 꿈꾸던 소년의 눈빛

3. 불꽃에 매료된 소년, 금단의 기술에 다가가다

최무선은 글공부보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데 훨씬 더 큰 흥미를 느꼈다. 열 살 무렵부터 그는 종이, 돌멩이, 풀잎을 가지고 다양한 구조물을 만들어내곤 했다. 특히 그는 불꽃과 연기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관심을 보였다. 정월대보름, 마을에서 쥐불놀이가 열릴 때면 그는 누구보다 먼저 불을 피웠고, 타는 각도와 연기의 방향을 유심히 살폈다. “왜 불은 위로만 올라갈까?”라는 그의 질문은 어른들에게는 별것 아닌 호기심처럼 보였지만, 최무선은 이 물리적 현상에서 원리를 찾고 싶어 했다.

그의 열두 살 무렵, 마을 장터에서 우연히 들은 이야기가 그의 삶을 바꿔놓는다. 어떤 낯선 장수가 중국 원나라에서 ‘불을 뿜는 무기’가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 이 말은 어린 최무선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그는 몰래 장사를 따라다니며 화약과 관련된 이야기를 캐묻기 시작했다. 그는 고서적을 통해 ‘화약’이라는 것이 염초, 숯, 유황이라는 세 가지 재료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접했고, 집 근처 산과 시장을 돌아다니며 이를 하나하나 구해보는 실험을 시도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의 손에 숯가루가 묻어있고, 방 한구석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놀라기도 했지만, 최무선은 “이걸 알면, 나쁜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고 지킬 수 있어요.”라는 말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릴 적부터 그는 기술을 단순한 재미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목적 있는 지식으로 받아들였다. 불꽃을 장난감으로 삼지 않고, 그것이 어떻게 현실을 바꿀 수 있는지를 고민하던 소년의 시선은 이미 과학자이자 전략가로서의 출발점이었다.

 

4. 나라를 위한 기술, 지식을 무기로 만들다

청년이 된 최무선은 개경으로 올라가 관직에 진출할 기회를 얻었지만, 그는 곧 학문적 탐구보다는 실용 기술에 더욱 집중했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화약에 대한 관심과 실험 기록을 정리하면서, 그는 본격적으로 ‘군사적 목적’으로의 활용을 고민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고려 조정은 화약 기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고, 일부는 위험하다고만 여겨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최무선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조정에 “화약 무기를 만들면 왜구의 침입을 막을 수 있다”라고 수차례 상소했고, 1377년 결국 국왕으로부터 승인받아 화통도감(火筒都監)이라는 기관을 설치하게 한다. 이 기관은 고려 역사상 최초로 조직적으로 화약을 제조하고, 이를 무기화하는 공식 부서였다. 이 모든 성과는 단지 어른이 되어 능력이 생겨서 이룬 결과가 아니었다. 어릴 적 마을이 불탔던 기억, 전쟁의 공포 속에서 외면당하던 백성들의 모습, 그리고 스스로 실험하며 만들어본 조그마한 연기의 움직임까지—그 모든 유년기의 경험이 하나로 뭉쳐져 탄생한 결과였다.

최무선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국가를 지킬 수 있는 실용 지식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기술로 승화시켜, 무기 하나로 백성을 보호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실현했다. 조선 초기에까지 그의 기술은 영향을 미쳤고, 조선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화포를 적극 활용해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결국 최무선의 유년기의 시선 하나, 질문 하나가 조국의 운명을 바꾸는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