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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 모란 향기를 예측한 소녀가 별을 세우기까지

by onary 2025. 11. 26.

"여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느냐?"

이 말은 632년 신라에서 가장 흔한 비난이었다.

진평왕이 죽었다. 아들이 없었다. 왕위는 딸 덕만에게 갔다.

귀족들은 반발했다. "전례가 없다."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 "나라가 망할 것이다."

하지만 덕만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리고 15년 후, 그녀가 다스린 신라는 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삼국통일의 기초가 마련되었다.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 모란 향기를 예측한 소녀가 별을 세우기까지

 

서기 595년경(추정), 신라 서울(지금의 경주).

진평왕에게서 한 소녀가 태어났다. 이름은 덕만(德曼), 훗날의 선덕여왕(善德女王).

그녀는 왕녀로 태어났지만,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 신라에는 여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 소녀는 달랐다. 어린 시절부터 보통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었으며, 알 수 없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모란 향기를 예측한 소녀가, 여자라는 한계를 넘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어 별을 세운 이야기다.

 

1.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 모란꽃 그림

605년경, 덕만 10세.

어느 날, 당나라에서 선물이 도착했다.

모란꽃 그림과 씨앗.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궁궐 사람들 모두 감탄했다.

"정말 아름답구나!" "이 꽃을 키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덕만은 그림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이 꽃은 향기가 없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놀랐다. "공주님, 그림만 보고 어떻게 아십니까?" "그림에 나비가 없습니다."

"나비가 없으면요?"

"꽃에 향기가 있으면 나비가 모입니다. 화가가 나비를 그리지 않은 것은 이 꽃에 향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어린 공주가 무슨 말을...'

몇 달 후, 씨앗에서 모란꽃이 피었다.

아름다웠다. 하지만 향기가 없었다.

덕만의 예측이 맞았다.

사람들은 놀랐다. 진평왕은 딸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보통 아이가 아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기록: "선덕왕이 지덕(知德, 미리 아는 지혜)을 가진 것이 세 가지 있었는데, 첫째가 모란꽃 일화다."

 

2. "두꺼비가 우는 곳에 적군이 숨어 있습니다" - 영묘사 두꺼비

612년경, 덕만 17세.

어느 겨울날, 영묘사(靈廟寺) 옥문지(玉門池)에서 두꺼비 수백 마리가 울었다.

겨울에 두꺼비가 우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신하들이 보고했다. "전하, 영묘사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무슨 일이냐?" "두꺼비 떼가 사흘 동안 계속 울고 있습니다."

진평왕은 걱정했다. "흉조인가?"

그때 덕만이 나섰다.

"아버지, 군사를 보내십시오."

"어디로?" "영묘사 서쪽 2천 보 되는 곳입니다. 적군이 숨어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아느냐?" "두꺼비의 울음을 들어보면 화가 나서 우는 소리입니다. 옥문지의 '옥문(玉門)'은 여자의 음부를 뜻합니다. 여자는 음(陰)이고, 두꺼비도 음입니다. 음이 음을 만나 화를 내는 것은 남자 병사들이 여자 땅에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신하들은 의아했다. 하지만 진평왕은 명령했다.

"가서 확인해 보아라."

군사들이 영묘사 서쪽으로 갔다.

계곡에 백제 군사 500명이 숨어 있었다. 신라군이 기습하여 모두 섬멸했다.

덕만의 두 번째 예측이 맞았다.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덕만 공주는... 범상치 않다." "귀신같은 지혜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워했다. '저 무서운 공주가 왕이 되면 어쩌지?'

 

3. "나는 왕이 될 수 없다" - 여자라는 벽

615년경, 덕만 20세.

진평왕에게는 세 딸이 있었다. 천명(天明), 덕만(德曼), 선화(善花).

아들은 없었다.

어느 날, 진평왕이 신하들을 불렀다. "과인에게 아들이 없다. 후계자를 정해야 한다."

신하들이 대답했다. "공주님들 중에서 정하시겠습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반대가 심했다.

"전하, 신라 역사상 여왕은 없었습니다." "여자가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백성들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진평왕은 고민했다.

덕만은 그 고민을 알았다.

밤, 덕만은 혼자 첨성대 터를 걸었다. 아직 첨성대는 지어지지 않았다. 그저 빈 언덕이었다.

하늘을 올려다봤다. 별이 쏟아졌다.

'나는 왕이 될 수 없다고?'

슬펐다. 능력은 있는데, 성별이 문제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야, 지금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내가 여자라는 문제로 좌절하는 일은 없을 테야.'

 

4. 620년대, 궁궐에서 배운 정치와 전쟁

620년대, 덕만 25-30세.

왕위 계승자는 아니었지만, 덕만은 정치를 배웠다.

신하들의 반대는 있었지만, 진평왕은 이미 덕만을 왕위계승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진평왕의 조정 회의에 참석했다. 신하들의 의견을 들었다. 백제와 고구려의 위협을 봤다.

신라는 약했다.

서쪽에서는 백제가,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계속 침략했다.

어떤 해는 40여 성을 빼앗겼다. 어떤 해는 수도까지 포위당했다.

덕만은 고민했다.

'왜 우리는 늘 공격받는가?' '왜 우리는 약한가?'

그리고 깨달았다.

'인재가 부족하다.' '신분제 때문에 능력 있는 사람을 쓰지 못한다.'

화랑도를 주목했다.

화랑도는 신라의 청년 조직이었다. 귀족 자제들만이 아니라 평민 출신도 있었다.

덕만은 화랑도에 관심을 가졌다. '이들 중에 인재를 찾아야 한다.'

김춘추를 처음 본 것도 이 시기였다.

620년대 초반, 김춘추는 10대 후반의 화랑이었다. 총명했고, 야심이 있었다.

덕만은 직감했다. '저 청년은 다르다.'

김유신도 주목했다.

가야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김유신. 하지만 무예가 뛰어났고, 전략적 사고가 있었다.

'저 청년도 쓸 만하다.'

덕만은 기억했다. 언젠가 왕이 된다면, 저들을 등용하리라.

 

5. 632년, "나는 왕이 되겠습니다" - 운명의 순간

632년, 덕만 37세.

진평왕이 병에 걸렸다.

임종이 가까워졌다.

신하들이 모였다. "후계자를 정해야 합니다."

진평왕은 딸들을 불렀다. 둘째 천명은 이미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셋째 선화는 백제로 시집갔다.

남은 것은 장녀 덕만뿐.

"덕만아." "네, 아버님." "너는... 왕이 될 준비가 되어 있느냐?"

덕만은 망설이지 않았다.

"네, 아버님. 준비되어 있습니다."

"신하들이 반대할 것이다." "이기겠습니다."

"백성들이 의심할 것이다." "증명하겠습니다."

"백제와 고구려가 얕잡아볼 것이다." "물리치겠습니다."

진평왕은 미소 지었다.

"그래. 너는 나의 딸답다."

632년 정월, 진평왕 승하. 632년 2월, 덕만 즉위. 덕만은 마음속의 품을 결심을 이루어냈다. 

신라 최초의 여왕, 선덕여왕.

 

6. 즉위 직후, "여왕을 인정할 수 없다" - 반대와 조롱

632년, 즉위 직후.

예상대로, 반대가 터져 나왔다.

귀족들: "여자가 왕이라니, 말이 되는가?" "신라가 망할 징조다."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려고?"

백제 무왕: 선덕여왕 즉위 소식을 듣고 비웃었다. "신라에 사내가 없어 여자를 왕으로 삼았구나."

그리고 침략을 시작했다.

고구려도 마찬가지. "신라가 약해졌다. 지금이 기회다."

선덕여왕은 흔들리지 않았다.

첫 조정 회의에서 말했다.

"과인은 여자다. 이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인은 왕이다. 이것도 부정하지 않겠다."

"신하들이여, 과인을 도와 신라를 지켜라. 과인도 여러분을 믿고 나라를 맡기겠다."

그리고 인재 등용을 시작했다.

김춘추를 불렀다. "그대의 재능을 아낀다. 나를 도와달라."

김유신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출신은 중요하지 않다. 능력이 중요하다."

 

7. 634년, 첨성대 건설 - "나는 별을 보겠다"

634년, 선덕여왕 재위 3년.

선덕여왕은 명령했다.

"첨성대(瞻星臺)를 세워라."

신하들이 물었다. "무엇에 쓰시려고요?" "별을 보려 한다."

"별을요?" "별을 보면 계절을 알 수 있고, 때를 알 수 있다. 농사를 짓는 데도, 전쟁을 하는 데도 필요하다."

634년, 첨성대 건설 시작. 647년 완공.

높이 9.17미터. 돌 362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

선덕여왕은 자주 첨성대에 올랐다.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다.

어린 시절 빈 언덕에서 별을 보던 소녀가, 이제 왕이 되어 별을 재는 탑을 세웠다.

 

8. 643년, 황룡사 9층 목탑 - "주변 9국을 제압하라"

643년, 선덕여왕 재위 12년.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이 계속되었다. 642년에는 대야성이 함락되어 김춘추의 딸이 죽었다.

신라는 위기였다.

선덕여왕은 결심했다.

"황룡사에 9층 목탑을 세우겠다."

신하들이 반대했다. "전하, 전쟁 중인데 탑을 세웁니까?" "지금은 군사를 키울 때입니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고집했다.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탑을 세워 민심을 안정시켜야 한다."

자장법사를 불렀다.

"큰 탑을 세우시오. 9층으로." "9층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주변 9개국을 제압한다는 뜻이오."

643년 건설 시작. 645년 완성.

높이 80미터가 넘는 거대한 목탑. 신라 최대의 건축물.

백성들은 탑을 보며 위안을 얻었다. '우리 신라가 아직 망하지 않았구나.'

 

9. 647년, "나는 도리천에 태어날 것이다" - 여왕의 예언

647년, 선덕여왕 재위 16년.

선덕여왕이 병에 걸렸다.

"도리천(忉利天)에 묻어달라."

"도리천이 어디입니까?" "낭산(狼山)이다."

신하들은 의아했다. '도리천은 불교의 천국인데, 왜 낭산이라고 하시는가?'

하지만 묻지 않았다.

647년 정월, 선덕여왕 승하.

유언대로 낭산에 묻혔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문무왕이 낭산 아래에 사천왕사(四天王寺)를 세웠다.

불교에서 사천왕천 위가 도리천이다. 선덕여왕의 능이 도리천 위치에 있게 된 것이다.

선덕여왕의 마지막 예측도 맞았다.

 

🌸 결론: 모란 향기를 예측한 소녀가 별을 세운 여왕이 되다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은 관찰로 시작되었다.

모란꽃 그림을 보고 향기가 없음을 알았고, 두꺼비 소리를 듣고 적군이 숨었음을 알았으며, 별을 보고 나라의 미래를 생각했다.

그녀는 왕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 여자였으니까.

하지만 운명을 바꿨다.

37세에 왕이 되었고, 15년간 신라를 다스렸으며, 김춘추와 김유신을 등용하여 통일의 기초를 놓았다.

선덕여왕이 남긴 것은 첨성대와 황룡사탑만이 아니었다.

"여자도 할 수 있다." "성별이 아니라 능력이 중요하다."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선덕여왕이 보여준 리더십이었다.

그녀가 15년간 다진 기초 위에서, 김춘추가 외교를 펼쳤고, 김유신이 전쟁을 이겼으며, 문무왕이 통일을 완성했다.

이것이 선덕여왕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지혜가 만든 여왕의 이야기다.

모란 향기를 예측한 10세 소녀는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고, 별을 세우고 나라의 기초를 다졌다.

1,400년이 지난 지금도, 경주 첨성대는 그녀를 기억하게 한다.

"여자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김부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5, 신라본기 5 선덕왕 - 한국고전번역원
  • 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1, 기이 편 선덕왕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 - 한국고전번역원
  • 『화랑세기(花郞世紀)』 (진위 논란 있음)

참고 서적

  • 이영호, 『선덕여왕』, 푸른 역사, 2012
  • 서영교, 『신라 여왕 연구』, 학연문화사, 2006
  • 이종욱, 『신라의 역사 1』, 김영사, 2002
  • 전덕재, 『신라 골품제 사회와 화랑도』, 일조각, 1996
  • 김영하, 『선덕여왕과 진덕여왕』, 지식산업사, 2004

학술 논문

  • 서영교, "선덕여왕대의 정치와 사회", 『신라문화』
  • 이영호, "선덕여왕의 즉위와 정치적 위상", 『한국고대사연구』
  • 김창겸, "선덕왕대 화랑도와 인재 등용", 『역사학보』
  • 주보돈, "신라 여왕의 출현과 그 배경", 『한국사연구』

유적 및 문화재

  • 첨성대(국보 제31호) - 경북 경주시
  • 황룡사지(사적 제6호) - 경북 경주시
  • 선덕여왕릉(사적 제182호) - 경북 경주시 낭산
  • 영묘 사지 - 경북 경주시

관련 기관

  • 국립경주박물관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경주시 문화관광과
  • 한국고전번역원

참고 사이트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한국고전번역원  
  • 문화재청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본 글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사료와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며, '지기 삼사(知幾三事, 세 가지 미리 안 일)' 일화와 당시 신라의 정치·사회 상황을 종합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모란꽃, 두꺼비, 도리천 일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나, 구체적인 대화 내용은 문학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첨성대 건설(634년), 황룡사 9층 목탑(643년), 김춘추·김유신 등용 등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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