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서 조선 건국은 대체로 '1392년'이라는 한 줄로 기억된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한 줄 뒤에는 30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채운 것은 네 사람의 협력이었다. 한 사람은 무인으로서 칼로 나라를 세웠고, 한 사람은 책사로서 펜으로 나라를 설계했으며, 한 사람은 왕자로서 왕권으로 나라를 완성했고, 한 사람은 개혁가로서 법으로 나라의 기초를 다졌다.
서로 다른 역할, 하나의 목표. 새로운 나라, 조선.

이 글은 '조선 건국의 주역들'에 대한 프로젝트의 이유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한 인물의 업적만 나열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협력했는지를 따라가며, 조선 건국 리더십의 뿌리를 찾는다.
1️⃣ 왜 고려는 무너지고 조선이 세워졌을까?
고려는 474년을 이어졌다.
918년 왕건이 세운 나라. 불교 국가, 귀족 사회, 과거제.
하지만 14세기 후반, 고려는 무너지고 있었다.
권문세족이 땅을 독점했고, 토지 제도가 붕괴했으며, 백성은 굶주렸고, 왜구가 침입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고려를 개혁해야 한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아예 새 나라를 세워야 한다."
1392년 7월, 조선 건국.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이 세워졌다.
왜일까?
단순히 이성계가 강해서? 반만 맞다. 정도전이 똑똑해서? 반만 맞다.
진짜 이유는 네 사람의 협력이었다.
이성계만 있었다면 단순한 쿠데타로 끝났을 것이다. 정도전만 있었다면 이론으로 끝났을 것이다. 이방원만 있었다면 권력 투쟁으로 끝났을 것이다. 조준만 있었다면 개혁안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네 사람이 모였다.
무력, 이념, 권력, 제도. 네 가지가 합쳐져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이 시리즈는 그 네 사람의 이야기다.
1360년대 이성계의 동북면 전투부터, 1398년 1차 왕자의 난까지, 거의 40년에 걸친 건국의 여정.
그 긴 시간 동안 네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때로는 협력했고, 때로는 충돌했다.
그리고 마침내, 500년을 이어갈 왕조를 세웠다.
2️⃣ 1360년대부터 1398년까지, 조선을 만든 네 명의 리더
이 시리즈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네 명의 리더를 묶는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달랐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삶을 '주어진 대로'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래 인물들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 축이 된다. 출생 연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335년생
이성계: 칼을 든 무인, 전장에서 조선을 세우다
이성계(李成桂, 1335-1408, 태조)는 조선을 세운 무인이었다. 동북면 출신, 변방의 무장. 처음부터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다.
하지만 전장에서 계속 이겼다. 왜구를 무찔렀고, 홍건적을 격퇴했으며, 여진족을 정벌했다.
그리고 1388년, 위화도 회군.
최영의 요동 정벌 명령을 거부하고,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돌아왔다.
쿠데타.
고려의 실권을 장악했다. 하지만 이성계는 혼자가 아니었다.
정도전이 이론을 제공했고, 조준이 토지 제도를 개혁했으며, 아들 방원이 반대파를 제거했다.
1392년 7월, 이성계 즉위. 조선 태조.
57세에 왕이 된 무인. 칼로 나라를 세웠다.
이성계의 리더십은 '실행의 힘'이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 있어도, 실제로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소용없다. 이성계는 전장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았다.
그 무력 위에 조선이 세워졌다.
📍 1342년생
정도전: 펜을 든 책사, 새로운 나라를 설계하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은 조선을 설계한 책사였다. 가난한 양반 출신, 유학자. 고려 관료였지만 권문세족과 맞서 싸웠다.
유배를 당했고, 떠돌았으며, 가난에 시달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고려는 무너졌다. 새로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
정도전은 이성계를 만났다. 무력은 있지만 이론이 없는 무장. 정도전이 이론을 제공했다.
"장군, 새로운 나라를 세웁시다."
『조선경국전』을 썼다. 조선의 통치 이념, 제도, 법을 설계했다.
재상 중심의 정치.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고, 재상이 실권을 가진다. 정도전이 꿈꾼 나라였다.
정도전의 리더십은 '설계의 힘'이었다.
무력만으로는 나라를 세울 수 없다. 이념이 필요하고, 제도가 필요하고, 명분이 필요하다.
정도전이 그것을 제공했다.
그가 설계한 조선은, 그가 죽은 후에도 500년을 이어졌다.
📍 1346년생
조준: 법을 든 개혁가, 토지 제도로 나라의 기초를 다지다
조준(趙浚, 1346-1405)은 조선의 토지 제도를 만든 개혁가였다. 가난한 양반 출신.
어린 시절 땅을 빼앗기는 것을 봤다. 권문세족이 토지를 독점하는 것을 봤다.
"이건 불공정하다."
10세 소년의 분노였다. 그 분노가 평생의 개혁 의지가 되었다.
과거에 급제하고, 관료가 되고, 개혁파에 합류했다.
정도전과 함께 토지 개혁을 추진했다.
1390년, 과전법 제정.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하고, 관료에게 직급에 따라 재분배한다.
조선의 토지 제도 기초.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수 있었던 것도, 조준이 제도 개혁으로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1392년, 조선 개국 1등 공신.
태조 이성계가 말했다. "조준이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조준의 리더십은 '제도의 힘'이었다.
무력으로 나라를 세우고, 이념으로 나라를 설계해도, 제도가 없으면 무너진다.
조준이 과전법으로 조선의 경제 기초를 다졌다.
📍 1367년생
이방원: 왕관을 쓴 왕자, 권력으로 나라를 완성하다
이방원(李芳遠, 1367-1422, 태종)은 조선을 완성한 왕자였다.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조선건국의 일등공신이나 왕세자 책봉에서 밀려났다. 태조는 막내 방석을 세자로 삼았다.
방원은 분노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는데."
정몽주를 제거한 것도 방원이었다. 정도전의 계획을 실행한 것도 방원이었다.
하지만 세자는 방석. 정도전은 알고 있었다. 왕자들 가운데 가장 똑똑한 왕자가 이방원이라는 것을.
하지만 정도전이 꿈꾸던 나라는 강력한 왕권이 아니었다. 재상이 다스리는 나라!
이방원은 분노했고, 인정할 수 없었다.
1398년, 1차 왕자의 난.
방원이 정도전을 죽였다. 방석도 죽였다. 피로 왕위를 쟁취했다.
1400년, 2차 왕자의 난. 형 방간을 제압했다.
1400년, 정종 양위. 방원 즉위. 조선 태종.
33세에 스스로 왕이 된 왕자.
이방원은 왕권을 강화했다. 정도전이 꿈꾼 재상 중심 정치를 무너뜨렸다. 왕이 직접 통치한다.
사병을 혁파했고, 6조 직계제를 실시했으며, 호패법을 시행했다.
강력한 왕권. 방원이 만든 조선이었다.
이방원의 리더십은 '권력의 힘'이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권력이 분산되면 무너진다.
방원은 왕권을 확립했다. 그 위에 조선 왕조가 안정되었다.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왕조가 안정되자 후대 태평성대가 이어졌다.
3️⃣ 이 시리즈를 읽는 방법
이 프로젝트는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글이면서도, 함께 읽을수록 더 깊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조선 건국은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역할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었다.
권장 읽기 순서:
1. 출생 연도순으로 읽기 (추천)
- 이성계(1335) → 정도전(1342) → 조준(1346) → 이방원(1367) 시대순으로 읽으면 건국의 과정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볼 수 있습니다.
2. 역할별로 읽기
- 무력·실행: 이성계
- 이념·설계: 정도전
- 제도·개혁: 조준
- 권력·완성: 이방원
3. 관심사별로 읽기
- 무인의 삶에 관심 있다면: 이성계
- 유학 사상에 관심 있다면: 정도전
- 토지 개혁에 관심 있다면: 조준
- 권력 투쟁에 관심 있다면: 이방원
4. 갈등으로 읽기
- 정도전 vs 이방원 (재상 중심 vs 왕권 중심)
- 이성계 vs 최영 (개혁파 vs 보수파)
- 조준 + 정도전 (개혁 동맹)
4️⃣ 마무리: 건국은 늘 '협력의 자리'에서 시작됐다
조선 건국의 리더들은 홀로 서지 않았다. 대신 함께 섰다.
이성계는 무력이 있었지만 이론이 없었다. 정도전은 이론이 있었지만 무력이 없었다.
조준은 제도를 만들 수 있었지만 실행할 힘이 없었다. 이방원은 야심이 있었지만 정당성이 없었다.
하지만 네 사람이 모였을 때, 새로운 나라가 세워졌다.
물론 완벽한 협력은 아니었다.
정도전과 이방원은 대립했다. 1398년, 이방원이 정도전을 죽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은 세워졌고, 500년을 이어졌다.
네 명의 리더, 네 가지 역할:
- 이성계는 칼로 나라를 세웠다
- 정도전은 펜으로 나라를 설계했다
- 조준은 법으로 나라의 기초를 다졌다
-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으로 나라를 완성했다
1360년대부터 1398년까지, 거의 40년의 시간.
그 긴 세월 동안 네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전장에서 싸우고, 책을 쓰고, 제도를 만들고, 권력을 잡았다. 때로는 협력했고, 때로는 충돌했다.
이 시리즈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위대한 성취는 한 사람의 천재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각자의 재능과 선택, 그리고 때로는 치열한 경쟁까지 모여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기록 너머에도 분명 존재했던 협력과 갈등이 있다.
혼자 왕이 되지 않았어도 함께 나라를 세웠고, 서로 대립했어도 결국 조선을 만들었다.
이 글은 기존에 작성된 네 명의 조선 건국 주역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되었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협력과 갈등의 이야기, 완벽한 리더가 아닌 각자의 역할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 - 국사편찬위원회
- 『고려사(高麗史)』 - 한국고전번역원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한국고전번역원
전반적 참고 서적
- 한영우, 『조선전기 사회경제연구』, 을유문화사, 1983
- 이익주,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연구』, 일조각, 1999
- 김당택, 『조선전기 정치사론』, 고려대학교출판부, 2003
- 도현철,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연구』, 일조각, 1999
개별 인물 참고 서적
이성계:
- 이익주, 『조선 태조 이성계』, 역사비평사, 1999
- 박영규, 『태조 이성계』, 들녘, 2001
정도전:
- 한영우, 『정도전 사상의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83
- 이병휴, 『정도전의 건국철학』, 세종대왕기념사업회, 2000
- 한영우, 『정도전』, 지식산업사, 1999
조준:
- 이익주, 『조선초기 토지제도 연구』, 일조각, 1986
- 강진철, 『고려토지제도사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80
이방원:
- 박영규, 『태종 이방원』, 들녘, 2002
- 김당택, 『태종의 왕권강화정책 연구』, 서울대학교출판부, 1995
학술 논문
- 한영우, "조선건국의 역사적 성격", 『한국사연구』
- 이익주, "과전법의 성립과 그 성격", 『한국사연구』
- 도현철, "조선초기 정치세력의 동향", 『역사학보』
- 김당택, "1398년 왕자의 난과 그 정치적 의미", 『한국사학보』
관련 기관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고전번역원
- 전주 경기전 (이성계 어진)
- 문화재청
참고 사이트
- 조선왕조실록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각 인물에 대한 상세 참고문헌은 개별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리즈 전체 글 바로가기
칼을 든 무인
이성계 편: 이성계의 어린 시절, "너는 변방 사람이야"라는 무시를 이긴 무인
펜을 든 책사
정도전 편: 정도전의 어린 시절, "책만 읽어서 뭐하냐"는 무시를 이긴 소년
법을 든 개혁가
조준 편: 조준의 어린 시절, 땅을 빼앗긴 소년이 과전법으로 나라를 세우기까지
스스로 왕관을 쟁취한 왕자
이방원 편: 이방원의 어린 시절, 다섯째 아들이 조선을 완성하기까지
💡 이 프로젝트에 대해
- 각 글은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함께 읽으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합니다
-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인물의 심리와 동기에 대해서는 해석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 협력과 갈등을 모두 다루며, '완벽한 영웅'이 아닌 '현실의 리더'들을 그립니다
- 어린 시절에 집중하여, 그들의 리더십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 이 시리즈를 읽고 나서
이성계, 정도전, 조준, 이방원.
네 사람, 네 가지 역할.
하지만 그들이 이룬 것은 하나였습니다.
조선 건국.
오늘날 우리가 500년 조선 왕조를 기억하는 것은 이들의 협력과 갈등 덕분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완벽하지 않지만 보완하며, 때로는 대립했어도 결국 새로운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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