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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조준의 어린 시절, 땅을 빼앗긴 소년이 과전법으로 나라를 세우기까지

by onary 2025. 12. 25.

불공정을 목격한 양반 자제에서 조선의 토지제도를 설계한 개혁가로

"왜 저 사람들은 땅이 수백 결인데, 우린 먹을 게 없나요?" 어린 소년이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못했다.

1350년대, 고려.

권문세족(權門勢族)은 땅을 독점했고, 양반과 백성은 가난에 시달렸다. 토지 제도가 무너졌고, 불공정이 만연했다.

어린 조준(趙浚)은 그것을 목격했다. 가난한 양반가의 아들. 땅도 없고, 돈도 없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하나의 의문이 자라났다. "왜 이렇게 불공정한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40년 후, 그 소년은 과전법(科田法)을 만들어, 조선의 토지제도를 설계했다.

조준의 어린 시절, 땅을 빼앗긴 소년이 과전법으로 나라를 세우기까지. 어린 시절의 조준이 땅을 빼앗기는 사람들을 보며 언젠간 내가 바로 잡겠다는 다짐을 하는 장면.

1. "우리 땅이 또 줄었다" - 가난한 양반가의 현실

1356년경, 조준 10세.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조준아..." "네, 아버지." "우리 땅이 또... 줄었다." "왜요?"

"이웃 권세가가 빼앗았다. 문서를 위조했다고 하는구나."

조준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 남의 땅을 빼앗아?'

"아버지가 관아에 가서 말씀하시면 되잖아요?" "소용없다. 저들은 힘이 있다. 고위 관료와 연결되어 있어."

"그럼 우리는요?" "우리는... 참아야 한다."

조준은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건... 불공정하다.' 양반인 우리 집도 이런데, 평민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10세 소년의 첫 번째 의문이었다

1358년경, 조준 12세.

마을에 큰일이 있었다. 이웃집 농민이 자기 땅을 빼앗겼다.

권문세족의 노비가 와서 말했다.

"이 땅은 이제 우리 주인 것이다." "무슨 소리요! 이건 우리 조상 대대로 경작하던 땅이오!" "문서가 있다. 여기 보라."

문서에는 도장이 찍혀 있었다. 관아의 도장.

하지만 농민은 억울했다. "이건 가짜요! 나는 그런 문서에 도장을 찍은 적 없소!"

"닥쳐라. 관아에서 인정한 문서다."

농민은 쫓겨났다. 평생 경작하던 땅에서.

조준은 그 광경을 봤다. 농민의 아이들이 울었다. "아버지, 우리 어디로 가요?"

조준은 주먹을 쥐었다. '이건 틀렸다.' '이건 절대 틀렸다.'

12세 소년은 그날 배웠다.

힘없는 사람은 땅을 빼앗긴다. 문서를 위조해도 관아가 인정하면 그만이다. 불공정한 세상.

 

2. "왜 이렇게 되었을까?" - 토지 제도를 공부하다

1360년경, 조준 14세.

조준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고려가 처음 세워졌을 때도 이랬나요?" "아니다. 고려 초기에는 달랐다."

"어떻게요?" 아버지 조인벽은 아들에게 설명했다.

"고려 태조 왕건은 전시과(田柴科)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관료에게 직급에 따라 땅을 나눠줬지."

"그럼 공정했네요?" "그렇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졌다."

"왜요?" "힘 있는 자들이 땅을 독점했다. 권문세족이 토지를 겸병(兼倂)했다. 문서를 위조하고, 힘으로 빼앗았다."

조준은 더 물었다. "그럼 왜 나라가 막지 않았어요?"

"권문세족이 곧 나라였기 때문이다." 조준은 그날 깨달았다.

'제도가 문제구나.' '좋은 제도를 만들어도, 지키지 않으면 소용없구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14세 소년은 생각하기 시작했다.

1362년경, 조준 16세.

조준은 과거 공부를 시작했다. 가난한 집안이었지만, 양반이기에 공부할 수 있었다.

유학(儒學)을 배웠다. 『논어』, 『맹자』, 『주례』.

특히 『주례(周禮)』에 빠졌다.

주나라의 제도를 기록한 책. 토지 제도, 세금 제도, 관료 제도.

조준은 밤새 읽었다.

'이상적인 제도가 있구나.' '정전법(井田法) - 토지를 공평하게 나눈다.' '이런 제도를 고려에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16세 소년은 꿈을 꾸기 시작했다.

언젠가 관료가 되어, 토지 제도를 개혁하는 꿈.

 

3. "나는 제도로 세상을 바꾸겠다" - 젊은 개혁가의 탄생

1365년, 조준 19세.

과거에 급제했다.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가난한 양반가 출신이 관료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관직을 받았지만 낮은 자리. 권문세족이 고위직을 독점했다.

조준은 좌절하지 않았다. '천천히 가자. 언젠가 기회가 올 것이다.'

1370년대, 조준 20대 후반~30대. 조준은 조정에서 개혁파 관료들을 만났다.

정몽주(鄭夢周). 정도전(鄭道傳). 남은(南誾).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토지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아야 합니다." "백성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조준은 그들과 뜻을 같이했다. 특히 정도전과 가까워졌다.

"조준, 자네도 토지 개혁을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그것이 꿈이었습니다."

"나도 그렇네. 우리 함께 힘을 합치세." 두 사람은 토지 개혁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1383년, 조준 37세.

최영(崔瑩) 장군과 충돌했다. 최영은 보수파. 권문세족을 옹호했다.

조준은 개혁파. 토지 개혁을 주장했다.

"조준, 그대는 어찌하여 나라를 어지럽히는가?" 최영이 호통쳤다.

"장군, 지금 나라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토지 제도가 붕괴했습니다."

"그래도 함부로 바꿀 수는 없다!" "바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조준은 물러서지 않았다. 37세, 이제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다.

 

4. 1388~1392년, 위화도 회군과 과전법 - "드디어 바꿀 수 있다"

1388년, 조준 42세.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했다. 최영이 실각했다. 조준은 기회를 봤다. "이제 개혁할 수 있다!"

이성계와 손잡았다. 정도전, 남은과 함께 개혁을 추진했다.

1390년, 과전법(科田法) 제정. 조준이 주도했다.

핵심 내용: 권문세족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를 몰수하고, 관료에게 직급에 따라 토지를 재분배한다.

어린 시절의 꿈이 현실이 되었다. 44세, 30여년을 기다렸다. 10세에 땅을 빼앗기는 것을 보고, 44세에 제도로 바로잡았다.

1392년 7월, 조선 개국. 이성계가 왕이 되었다. 조준은 개국 1등 공신.

태조 이성계가 말했다. "조준이 없었다면 조선도 없었을 것이다. 과전법이 나라의 기초다." 조준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제도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불공정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 결론: 땅을 빼앗긴 소년이 제도로 나라를 세우다

조준의 어린 시절은 불공정으로 가득했다.

10세에 우리 집 땅이 줄어드는 것을 봤고, 12세에 이웃 농민이 쫓겨나는 것을 봤다.

"왜 이렇게 불공정한가?"

소년의 의문이었다.

하지만 조준은 분노로 끝내지 않았다.

제도를 공부했다. 개혁을 준비했다.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44세에 과전법을 만들어, 불공정을 바로잡았다.

10세에 목격한 불공정은 44세에 과전법으로 바로잡았고, 조선의 토지 제도 기초가 되었다.

조준이 남긴 것은 과전법만이 아니었다.

"불공정을 보고만 있지 마라." "제도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

이것이 조준이 보여준 삶이었다.

이성계가 칼로 나라를 세웠다면, 정도전이 펜으로 나라를 설계했다면, 조준은 법으로 나라의 기초를 다졌다.

어린 시절의 불공정한 경험이, 평생의 개혁 의지가 되었고, 마침내 조선의 토지 제도를 만들었다.

1,4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땅을 빼앗긴 양반 자제에서 조선의 설계자로. 불공정을 목격한 소년에서 과전법의 창시자로.

이것이 조준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의문이 만든 개혁가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조선왕조실록』 태조실록 - 국사편찬위원회
  • 『고려사(高麗史)』 - 한국고전번역원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한국고전번역원

참고 서적

  • 이익주, 『조선초기 토지제도 연구』, 일조각, 1986
  • 강진철, 『고려토지제도사연구』, 고려대학교출판부, 1980
  • 한영우, 『조선전기 사회경제연구』, 을유문화사, 1983
  • 도현철, 『조선초기 정치지배세력연구』, 일조각, 1999

학술 논문

  • 이익주, "과전법의 성립과 그 성격", 『한국사연구』
  • 강진철, "고려말 토지겸병과 과전법", 『역사학보』
  • 한영우, "조준의 개혁사상", 『진단학보』

관련 기관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고전번역원  

참고 사이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선왕조실록

※ 본 글은 『고려사』, 『조선왕조실록』과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조준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며, 고려 말 토지 겸병 상황, 권문세족의 횡포, 개혁파의 활동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과전법 제정(1390), 조선 개국(1392), 개국 1등 공신 등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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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공정을 보고만 있지 않는 용기를 배워보세요
  • 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보세요
  • 준비하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 땅 한 뼘 없던 소년이 나라의 토지 제도를 만든 여정을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