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서 통일신라는 대체로 '676년'이라는 한 줄로 기억된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한 줄 뒤에는 70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긴 시간을 채운 것은 네 사람의 리더십이었다.
한 사람은 여왕으로서 인재를 보는 눈을 가졌고, 한 사람은 외교관으로서 적을 동맹으로 만들었으며, 한 사람은 장군으로서 불가능을 승리로 바꿨고, 한 사람은 왕으로서 진정한 통일을 완성했다

서로 다른 역할, 하나의 목표. 삼국통일.
이 글은 '삼국통일을 이룬 네 사람' 프로젝트의 이유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한 인물의 업적만 나열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어린 시절,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협력했는지를 따라가며, 통일신라 리더십의 뿌리를 찾는다.
1️⃣ 왜 신라만 통일할 수 있었을까?
삼국시대는 거의 700년을 이어졌다.
고구려, 백제, 신라. 셋 중 어느 나라도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고구려는 강했다. 수나라 100만 대군도 격퇴했고, 당나라와도 맞섰다. 백제는 교활했다. 외교로 고구려와 신라를 견제했고, 문화적으로 앞서 있었다. 신라는... 약했다. 가장 작았고, 가장 늦게 발전했으며, 늘 공격받았다.
그런데 결과는 역전되었다.
백제는 660년에 멸망했고, 고구려는 668년에 무너졌으며, 신라만 살아남아 676년 삼국을 통일했다.
왜일까?
단순히 운이 좋아서? 아니다. 당나라 덕분에? 반만 맞다.
진짜 이유는 리더십이었다.
신라에는 특별한 리더들이 있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사람들, 약점을 장점으로 전환하는 사람들, 서로 다른 재능을 하나로 모으는 사람들.
이 시리즈는 그 네 사람의 이야기다.
632년 선덕여왕의 즉위부터, 681년 문무왕의 죽음까지, 거의 50년에 걸친 통일의 여정.
그 긴 시간 동안 네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마침내, 한반도 역사상 처음으로 삼국을 하나로 만들었다.
2️⃣ 632년부터 681년까지, 통일을 만든 네 명의 리더
이 시리즈는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네 명의 리더를 묶는다.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달랐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삶을 '주어진 대로' 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래 인물들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 축이 된다. 시대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632-647년 재위 선덕여왕: 별을 본 여왕, 통일의 기초를 놓다
선덕여왕(善德女王, 재위 632-647)은 신라 최초의 여왕이었다. 아니, 삼국시대 최초의 여왕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왕이 될 수 없던 시대, 그녀는 왕위에 올랐다.
반대도 많았다. "여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느냐"는 비난, 백제 무왕의 조롱, 귀족들의 불신. 하지만 선덕여왕은 흔들리지 않았다.
선덕여왕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이었을까?
전쟁에서 이긴 것도, 영토를 넓힌 것도 아니었다. 인재를 보는 눈이었다.
선덕여왕은 김춘추를 믿었다. 혈통으로 왕족이기는 했으나, 애매한 위치의 김춘추를 중용했다.
"이 사람은 다르다. 이 사람은 신라를 구할 수 있다"라고 믿었다.
김유신도 믿었다. 가야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던 김유신을 장군으로 임명했다. "출신이 무엇이냐. 능력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첨성대를 세웠다. 천문을 관측하며 농사와 정치의 때를 읽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워 민심을 안정시켰다.
불교를 장려하며 사상적 기반을 다졌다.
선덕여왕은 직접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싸울 사람들을 준비시켰다.
그녀가 15년간 다진 기초 위에서, 김춘추가 외교를 펼쳤고, 김유신이 전쟁을 이겼으며, 문무왕이 통일을 완성했다.
선덕여왕의 리더십은 '준비하는 힘'이었다. 미래를 내다보고, 인재를 키우고, 토대를 다지는 힘. 화려하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리더십.
647년, 선덕여왕은 세상을 떠났다. 통일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통일의 씨앗을 심었다. 그 씨앗이 30년 후 열매를 맺었다.
📍 604-661년 (재위 654-661) 김춘추: 외교로 적을 동맹으로 만든 전략가
김춘추(金春秋, 604-661, 태종무열왕)는 신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외교가였다. 처음부터 왕위 계승 서열에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략과 외교로 왕이 되었고, 통일의 발판을 만들었다.
642년, 김춘추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대야성 함락. 백제군이 대야성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성주 김품석은 전사했고, 그의 아내이자 김춘추의 딸 고타소랑도 죽었다.
김춘추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복수하겠다. 백제를 반드시 무너뜨리겠다."
하지만 신라는 약했다. 백제와 고구려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었다.
김춘추는 깨달았다. '혼자서는 이길 수 없다. 동맹이 필요하다.'
643년, 고구려로 갔다. "우리 함께 백제를 칩시다." 하지만 고구려는 거절했다. 오히려 억류당할 뻔했다.
648년, 당나라로 갔다. 당 태종을 만나 설득했다. "우리는 백제를 치고 싶고, 당나라는 고구려를 치고 싶습니다. 함께 합시다."
나당동맹 체결.
이것은 단순한 동맹이 아니었다. 신라의 운명을 건 선택이었다.
김춘추는 알고 있었다. '당나라는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하다. 이용하되, 조심해야 한다.'
654년, 김춘추는 왕이 되었다. 태종무열왕.
660년, 드디어 백제를 무너뜨렸다. 신라-당 연합군이 사비성을 함락시켰다. 18년 전 딸을 잃은 복수를 완성했다.
하지만 고구려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661년, 김춘추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 아들 법민(문무왕)에게 유언했다. "고구려를 무너뜨려라. 그리고... 당나라를 조심해라. 그들은 우리를 삼키려 할 것이다."
김춘추의 리더십은 '전략의 힘'이었다.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이기려면, 머리를 써야 한다. 외교로 적을 고립시키고, 동맹으로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
그가 세운 전략 위에서, 김유신이 싸웠고, 문무왕이 완성했다.
595-673년 김유신: 가야의 후손에서 신라 최고의 장군으로
김유신(金庾信, 595-673)은 신라 역사상 최고의 장군이었다. 아니, 한국 역사상 최고의 장군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작은 순탄하지 않았다.
김유신은 가야 왕족의 후손이었다.
532년 가야가 신라에 병합되었다. 김유신의 할아버지 김무력은 가야 왕족이었지만, 신라에서는 진골이 아닌 6두품이었다. 신분 제한이 있었다.
어린 김유신은 차별을 받았다. "너는 가야 놈이다." "너는 신라인이 아니다."
하지만 김유신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인가? 가야인인가, 신라인인가?"
그리고 답했다. "나는 이 땅을 지키는 사람이다."
5세부터 칼과 말을 배웠다. 혹독하게 자신을 단련했다. 15세에 화랑이 되었고, 동료들과 함께 세속오계를 실천했다.
천관녀 사건.
젊은 시절 김유신은 천관녀라는 여인을 사랑했다. 밤마다 말을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어느 날 깨달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장군이 되어야 한다.'
김유신은 사랑하던 말의 목을 베었다. 말이 천관녀 집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극단적인 자기 절제였다.
20대부터 전장에 나갔다.
백제와의 전쟁, 고구려와의 전쟁. 수없이 많은 전투에서 승리했다.
660년, 황산벌 전투.
5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계백의 5천 결사대와 맞섰다. 치열한 전투 끝에 승리했다. 사비성이 함락되었고, 백제가 멸망했다.
668년, 고구려 정벌.
평양성 함락에 참여했다. 고구려가 무너졌다.
하지만 김유신은 알았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다.'
당나라가 변했다. 동맹국이었던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 땅을 모두 차지하려 했다.
김유신은 문무왕에게 조언했다. "전하, 우리는 당나라와 싸워야 합니다."
670-676년, 나당전쟁.
이미 70대 노인이 된 김유신은 직접 싸우지 못했다. 하지만 전략을 짰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을 지키는 것이고, 그들은 침략하는 것이다."
673년, 김유신은 78세로 세상을 떠났다.
통일을 3년 앞두고. 하지만 그가 다진 군사적 기반 위에서, 신라는 당나라를 몰아내고 진정한 통일을 완성했다.
김유신의 리더십은 '실행의 힘'이었다. 전략이 아무리 좋아도, 실제로 싸워서 이기지 못하면 소용없다.
김유신은 평생 전장에서 증명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패배를 승리로 바꾸는 힘.
그가 이긴 전쟁 위에서, 문무왕이 통일을 완성했다.
📍 626-681년 (재위 661-681) 문무왕: 전쟁 속에서 자란 왕자,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다
문무왕(文武王, 김법민, 626-681)은 삼국통일의 완성자였다. 선덕여왕이 기초를 놓고, 김춘추가 전략을 세우고, 김유신이 싸워서 이긴 것을 마지막으로 완성한 사람.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가득했다.
6세 때부터 전쟁의 공포를 봤다. 밤마다 들리는 말발굽 소리, 부상병들의 신음, 장례식의 울음.
642년, 16세 법민에게 비극이 찾아왔다.
대야성 함락. 누이 고타소랑이 백제군에게 죽었다.
법민은 아버지 김춘추가 통곡하는 것을 봤다. 그리고 맹세했다. "나는 백제를 무너뜨리겠다."
법민은 최고의 스승들 사이에서 자랐다.
아버지 김춘추에게서 외교와 전략을 배웠다. 외삼촌 김유신에게서 군사와 전투를 배웠다.
머리와 힘, 둘 다 배웠다.
654년, 아버지가 왕이 되자 왕세자가 되었다.
660년, 백제 멸망 전투에 참전했다. 34세, 처음으로 실전을 경험했다.
661년, 아버지가 임종하며 유언했다. "고구려를 멸하라. 그리고... 당나라와 싸워라."
35세에 왕이 된 문무왕은 아버지의 유언을 따랐다.
668년, 고구려 멸망. 7년간의 전쟁 끝에, 평양성이 함락되었다.
삼국이 모두 무너졌다.
하지만 진정한 통일은 아니었다.
당나라가 배신했다.
백제 땅도, 고구려 땅도 모두 당나라가 차지하려 했다.
문무왕은 결단했다. "동맹국이었지만, 이제는 적이다. 싸운다."
670-676년, 나당전쟁.
신라는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처음에는 고전했다. 당나라는 강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675년, 매초성 전투 승리. 676년, 기벌포 해전 승리.
당나라 수군을 격파했다. 당나라가 한반도에서 철수했다.
676년, 진정한 삼국통일 완성.
선덕여왕이 시작하고, 김춘추가 전략을 세우고, 김유신이 싸워서 이긴 것을, 마침내 문무왕이 완성했다.
681년, 문무왕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 신하들에게 유언했다.
"나를 화장하여 동해 바다에 뿌려라. 나는 죽어 용이 되어 바다를 지키리라."
유언대로, 문무왕은 화장되어 동해에 뿌려졌다. 대왕암.
사람들은 믿었다. 문무왕이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킨다고.
문무왕의 리더십은 '완성의 힘'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시작한 것을 끝까지 완수하는 힘. 아버지의 꿈을, 외삼촌의 승리를, 선조들의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힘.
그리고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는 헌신.
3️⃣ 이 시리즈를 읽는 방법
이 프로젝트는 한 편 한 편이 독립된 글이면서도, 함께 읽을수록 더 깊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통일신라는 한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네 사람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의 역할이 모여 하나의 결과를 만들었다.
권장 읽기 순서:
1. 시대순으로 읽기 (추천)
- 선덕여왕(632-647) → 김춘추(654-661) → 김유신(595-673) → 문무왕(661-681) 시대순으로 읽으면 통일의 과정이 어떻게 이어졌는지 볼 수 있습니다.
2. 역할별로 읽기
- 정치·기초: 선덕여왕
- 외교·전략: 김춘추
- 군사·실행: 김유신
- 통합·완성: 문무왕
3. 관심사별로 읽기
- 여성 리더십에 관심 있다면: 선덕여왕
- 외교·전략에 관심 있다면: 김춘추
- 군사·전쟁에 관심 있다면: 김유신
- 역경 극복에 관심 있다면: 김유신, 문무왕
- 부자 관계에 관심 있다면: 김춘추 + 문무왕
4. 관계로 읽기
- 선덕여왕 → 김춘추·김유신 등용
- 김춘추 ↔ 김유신 협력 (사돈 관계)
- 김춘추 → 문무왕 부자 관계
- 김유신 ↔ 문무왕 외삼촌-조카 관계
4️⃣ 마무리: 통일은 늘 '협력의 자리'에서 시작됐다
신라의 리더들은 홀로 서지 않았다. 대신 함께 섰다.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믿었고, 김춘추는 김유신과 협력했으며, 김유신은 문무왕을 도왔고, 문무왕은 선조들의 꿈을 완성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고, 다른 사람의 재능을 존중했으며, 하나의 목표를 향해 협력했다는 점이다.
네 명의 리더, 네 가지 역할:
- 선덕여왕은 인재로 통일의 기초를 놓았다
- 김춘추는 외교로 통일의 전략을 세웠다
- 김유신은 군사로 통일의 승리를 이뤘다
- 문무왕은 완성으로 진정한 통일을 완수했다
632년부터 681년까지, 거의 50년의 시간.
그 긴 세월 동안 네 사람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인재를 키우고, 전략을 세우고, 전쟁에서 이기고, 마침내 통일을 완성했다.
왕이 되지 않았어도 통일을 준비했고, 끝을 보지 못했어도 다음 세대를 믿었다.
이 시리즈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위대한 성취는 한 사람의 천재성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쌓아온 각자의 재능과 선택, 그리고 서로를 믿는 마음이 모여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지만, 기록 너머에도 분명 존재했던 협력이 있다.
혼자 왕이 되지 않았어도 함께 나라를 세웠고, 살아서 끝을 보지 못했어도 다음 세대가 완성한 리더들.
이 글은 기존에 작성된 네 명의 통일신라 주역들을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의도로 작성되었다.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협력의 이야기, 완벽한 리더가 아닌 각자의 역할을 다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기 위해.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김부식, 『삼국사기(三國史記)』, 한국고전번역원
- 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고전번역원
- 『화랑세기(花郞世紀)』 (진위 논란 있음)
전반적 참고 서적
-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 이종욱, 『신라의 역사 1, 2』, 김영사, 2002
- 전덕재, 『신라 육두품과 골품제 사회』, 일조각, 1996
- 신형식, 『삼국통일과 나당전쟁』, 지식산업사, 2006
개별 인물 참고 서적
선덕여왕:
- 이영호, 『선덕여왕』, 푸른역사, 2012
- 서영교, 『신라 여왕 연구』, 학연문화사, 2006
- 김부식,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
김춘추(태종무열왕):
- 김영하, 『태종무열왕』, 지식산업사, 2005
- 이종욱, 『김춘추』, 역사비평사, 2000
- 전덕재, 『삼국통일전쟁사』, 주류성, 2009
김유신:
- 이종욱, 『김유신』, 역사비평사, 1999
- 김태식, 『화랑세기로 본 신라인 이야기』, 김영사, 2002
- 신형식, 『가야사 연구』, 일조각, 1992
문무왕:
- 김영하, 『문무왕』, 지식산업사, 2006
- 전덕재, 『문무왕과 나당전쟁』, 주류성, 2015
- 신형식, 『신라 중대 정치사 연구』, 일조각, 1985
학술 논문
- 이기동,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한국사연구』
- 서영교, "선덕여왕대의 정치와 사회", 『신라문화』
- 전덕재, "나당전쟁 연구", 『한국고대사연구』
- 김창겸, "김유신과 화랑", 『역사학보』
관련 기관
- 국립경주박물관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한국고전번역원
- 국사편찬위원회
참고 사이트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문화재청
※ 각 인물에 대한 상세 참고문헌은 개별 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시리즈 전체 글 바로가기
기초를 놓은 여왕
선덕여왕 편: [선덕여왕의 어린 시절, 모란 향기를 예측한 소녀가 별을 세우기까지]
전략을 세운 외교가
김춘추(태종무열왕) 편: [김춘추의 어린시절, 폐위된 왕의 손자가 외교로 나라를 구하기까지]
실행한 장군
김유신 편: [김유신의 어린시절, "너는 가야 놈이다"라는 조롱을 이긴 소년]
완성한 왕
문무왕 편: [문무왕의 어린시절, 전쟁터에서 자란 왕자가 용이 되기까지]
💡 이 프로젝트에 대해
- 각 글은 독립적으로 읽을 수 있지만, 함께 읽으면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합니다
-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인물의 심리와 동기에 대해서는 해석적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 시대를 넘어 '협력'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네 명의 리더를 묶었습니다
- 어린 시절에 집중하여, 그들의 리더십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탐구합니다
💬 이 시리즈를 읽고 나서
선덕여왕, 김춘추, 김유신, 문무왕.
네 사람, 네 가지 역할.
하지만 그들이 이룬 것은 하나였습니다.
삼국통일.
오늘날 우리가 하나의 민족, 하나의 역사로 기억하는 것은 이들의 협력 덕분입니다.
혼자가 아닌 함께, 완벽하지 않지만 보완하며, 끝을 보지 못해도 다음 세대를 믿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보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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