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57 장영실의 어린시절, 가장 낮은 신분에서 하늘의 이치를 읽다 장영실, 조선 역사상 가장 독특한 인물.노비 출신으로 태어나 왕의 총애를 받은 과학자가 되었고, 자격루, 앙부일구, 측우기 같은 세계적 발명품을 만들었지만, 생몰연대조차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 그의 성공은 우연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 있었고, 그 눈은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이 글은 장영실이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는지 돌아본다. 1. 태어나는 순간부터 닫혀 있던 인생의 문장영실은 그런 시대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관청에 소속된 노비였고,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름보다 먼저 신분이 붙은 아이였다.『세종실록』에는 장영실을 "동래현 관노(官奴)"로 기록하고 있다.관노는 관청에 소속된 노비로, 개인 소유의 사노비보다는 처우가 나았지만 여전히 천민이었다... 2025. 11. 16. 광해군의 어린 시절,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 사랑도 없지만" 전쟁 영웅이자 실리외교의 명군이 되다 "광해는... 내가 아끼던 아들이 아니다." 1590년경, 선조가 신하에게 한 말이었다.광해는 15세였고 선조의 둘째 아들이었지만,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어머니 공빈 김 씨는 광해가 2세 때 세상을 떠났고, 그 후 선조는 다른 후궁 인빈 김 씨를 총애하며 그녀의 아들 신성군을 가장 아꼈다. 광해는 궁궐에서 자랐지만 외로웠고, 형 임해군은 난폭해서 후계자 감이 아니었기에 광해가 사실상 세자 후보였지만, 정작 아버지는 광해보다 신성군을 왕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광해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어머니도 일찍 돌아가셨고, 나는 혼자다.' 하지만 20년 후, 이 외로운 서자 왕자는 임진왜란 때 백성과 함께 싸운 전쟁 영웅이 되었고,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조선을 지킨 중립외교의.. 2025. 11. 15. 김만덕의 어린 시절, 결핍이 만든 판단력과 나눔의 철학 김만덕을 떠올리면 '제주를 구한 거상'이라는 말이 먼저 따라온다. 하지만 그 나눔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마음이 아니었다.어린 시절부터 배고픔과 불안 속에서 하루를 견디며, 사람의 사정을 먼저 보게 된 경험이 그녀의 바탕이 되었다.1794년, 제주에 대기근이 들었을 때 김만덕은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곡식을 사들였다.육지에서 배로 실어 온 쌀과 보리로 천여 명의 백성이 목숨을 건졌다. 정조는 이 소식을 듣고 감격하여 그녀에게 금강산 유람의 기회를 주었다. 조선시대 여성에게, 그것도 상인 출신 여성에게 주어진 전무후무한 영예였다. 그러나 그녀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아니, 처절했다.이 글은 김만덕의 어린 시절을 중심으로, 결핍이 어떻게 리더십의 씨앗이 되었는지 따라가 본다.📌 이 글은 '한국을 움직인.. 2025. 11. 15. 이전 1 ···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