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왕이 될 수 없다."
이 말은 어린 춘추가 평생 들어야 했던 말이었다.
할아버지는 왕이었다. 진지왕(眞智王). 하지만 2년 만에 폐위되었다. '음란하고 사치스럽다'는 이유였다.
그 손자인 춘추는, 왕족이었지만 왕위 계승에서 멀었다. 진골 출신. 신라 최고 귀족.
춘추는 늘 방계였다. 그런데 어느 날, 춘추는 깨달았다.
'덕만 공주는 여자인데도 왕이 되려 한다.' '그렇다면... 나도 진골이지만 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최초의 여왕. 최초의 진골왕.
춘추는 야심을 품었다.
그리고 50년 후, 그 야심을 실현했다.

604년, 신라 서울(지금의 경주). 진지왕의 아들 용수(龍樹)의 집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춘추(春秋).
할아버지는 2년 전 폐위된 왕. 아버지는 왕위를 잇지 못한 왕자. 춘추는 왕족으로 태어났지만, 왕위와는 멀었다.
이것은 왕위에서 멀었던 소년이, 최초의 진골왕을 꿈꾸고, 외교와 전략으로 그 꿈을 이룬 이야기다.
1. "나는 왜 왕이 될 수 없나?" - 폐위된 왕의 손자
609년경, 춘추 5세.
어린 춘추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다른 애들은 할아버지가 왕이라고 하던데, 우리 할아버지는요?"
"우리 할아버지도 왕이셨다."
"그럼 아버지가 왕이 되는 거 아니에요?"
아버지 용수의 얼굴이 굳었다.
"앉아라, 춘추야."
용수는 아들에게 할아버지 이야기를 했다.
"할아버지 진지왕은 576년에 왕위에 오르셨다. 하지만 2년 후인 578년, 화백회의에서 폐위되셨다."
"폐위요?" "왕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뜻이다."
"왜요?" "귀족들이 할아버지를 싫어했다. 왕이 너무 독단적이라고, 예법을 어긴다고 했다."
춘추는 이해하지 못했다. '왕인데 어떻게 쫓겨나?'
"그럼 아버지가 왕이 되면 되잖아요?"
"안 된다. 할아버지가 폐위되셨기 때문에, 우리는 왕위 계승에서 밀려났다."
"그럼 누가 왕이에요?" "할아버지의 동생 진평왕께서 왕위를 이으셨다."
춘추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왕족인데 왕이 될 수 없다니...'
억울했다. 분했다.
하지만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정말 안 되는 걸까?' '방법이 없을까?'
5세 소년의 첫 번째 야심이었다.
610년대, 춘추 10대 초반.
춘추는 진골 자제들이 받는 교육을 받았다.
유학(儒學)을 배웠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훈장이 가르쳤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 이것을 군군신신(君君臣臣)이라 한다."
춘추는 물었다. "만약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요?"
"신하가 간언해야 한다."
"간언을 듣지 않으면요?"
훈장이 당황했다.
"그럴 리가 없다. 성군(聖君)은 간언을 듣는다."
"할아버지는 간언을 듣지 않아서 폐위되셨다고 들었는데요?"
훈장이 말문이 막혔다. 춘추는 그날 배웠다.
'왕도 완벽하지 않다.' '왕도 실수한다.' '왕도 쫓겨날 수 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왕이 되는 것도... 정해진 게 아닐 수 있다.'
615년경, 춘추 11세.
역사를 배웠다. 신라의 역사. 박혁거세부터 진평왕까지.
춘추는 발견했다.
"선생님, 신라에는 박 씨 왕, 석 씨 왕, 김 씨 왕이 있었네요?" "그렇다."
"왕위가 한 성씨에만 있지 않았네요?" "초기에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김 씨가 왕위를 세습한다."
"언제부터요?" "내물 마립간 이후다. 약 200년 전이다."
춘추는 계산했다.
'200년 동안 김 씨가 왕위를 독점했다.'
'그 전에는 바뀌었다.'
'그렇다면... 또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어린 춘추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618년경, 춘추 14세.
천문학과 병법을 배웠다.
별을 관측하고, 계절을 읽고, 전쟁의 원리를 익혔다. 하지만 춘추가 가장 좋아한 것은 역사와 전략이었다.
중국 역사를 읽었다. 춘추전국시대, 진나라, 한나라.
춘추는 패턴을 발견했다.
'왕조는 바뀐다.' '강한 자가 왕이 된다.' '하지만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략이 필요하다.'
14세 소년은 책을 읽으며 전략가가 되어갔다.
2. 632년, "덕만이 왕이 된다면, 나도..." - 최초의 진골왕을 꿈꾸다
632년, 춘추 28세.
진평왕이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없었다.
왕위는 누구에게?
화백회의가 열렸다. 춘추도 참석했다. 진골 귀족으로서 발언권이 있었다.
귀족들이 논의했다.
"진평왕께 아들이 없으시다." "장녀 덕만 공주를 왕으로 추대하자."
"여자를 왕으로요?"
"전례가 없습니다." "신라 역사상 여왕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덕만 공주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컸다.
"덕만 공주는 지혜롭다." "모란꽃 일화를 보라. 예지력이 있다."
춘추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전례가 없어도 왕이 될 수 있구나.' 여자였던 덕만이 왕이 되려 한다. 신라 역사상 처음이다.
그렇다면...
'성골이 아닌 진골도 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춘추는 그날 밤 혼자 생각했다. 덕만은 성골(聖骨)이다. 부모가 모두 왕족인 최고 신분.
춘추는 진골(眞骨)이다. 할아버지가 폐위되어 성골에서 밀려났다.
하지만 덕만이 '최초의 여왕'이 될 수 있다면, 춘추도 '최초의 진골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8세 춘추는 그날 결심했다.
"나도 왕이 될 것이다."
전례가 없다고? 덕만도 전례가 없다. 진골이라고? 성골이 끊기면 진골이 왕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춘추는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춘추는 선덕여왕을 관찰했다. 여왕은 어떻게 권력을 유지하는가?
인재를 등용한다. 김유신을 장군으로 삼았다. 김춘추를 신임했다.
춘추는 배웠다. '인재가 중요하다.' '능력 있는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김유신과 가까워졌다.
625년경, 춘추 21세, 유신 30세.
"유신, 자네는 가야 출신이라 차별받는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나는 폐위된 왕의 손자라 왕위에서 멀어졌네." "비슷하군요."
"우리 힘을 합치세." 춘추는 유신의 재능을 알아봤다. 신라 최고의 장군이 될 사람.
629년, 춘추는 유신의 여동생 문희를 아내로 맞이했다.
경주 귀족들이 반대했다. "가야 출신과 혼인하다니!"
춘추는 개의치 않았다. '왕이 되려면 기존 질서를 깨야 한다.'
덕만이 '여자'라는 한계를 깬 것처럼, 춘추도 '폐위된 왕의 손자'라는 한계를 깰 것이다.
3. 젊은 시절, 전략가로 성장하다 - "힘이 아니라 머리로"
630년대, 춘추 30대.
춘추는 왕위를 향한 전략을 세웠다.
첫째, 인재를 모은다. 김유신과 혼인 동맹을 맺었다. 능력 있는 젊은 귀족들과 친분을 쌓았다.
둘째, 공을 세운다. 전쟁에서 직접 칼을 휘두르지는 않았지만, 전략을 짜고, 외교를 했다.
셋째, 왕실과 가까워진다. 선덕여왕을 보좌했다. 충성을 보였다. 춘추는 알았다.
'왕위는 힘으로만 얻는 게 아니다.' '명분이 필요하다.' '사람들의 인정이 필요하다.'
유신처럼 칼로 싸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 싸울 수 있었다.
외교와 전략. 그것이 춘추의 무기였다.
640년, 춘추 36세.
선덕여왕이 춘추를 불렀다.
"춘추, 과인은 그대를 믿는다." "황송하옵니다, 전하."
"그대는 지혜롭다. 전쟁만이 아니라 외교도 할 줄 안다." "감사합니다."
"언젠가 그대가 왕이 될지도 모르겠구나."
춘추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선덕여왕이 미소 지었다.
"과인도 여자라는 이유로 왕이 될 수 없다고 들었다. 하지만 왕이 되었지. 그대도 진골이라는 이유로 왕이 될 수 없다고 하지만... 세상은 변한다."
춘추는 무릎을 꿇었다.
"전하, 제가 만약 왕이 된다면, 전하처럼 현명한 왕이 되겠습니다." 선덕여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하겠다." 36세 춘추는 확신했다.
'나는 왕이 될 것이다.'
4. 642~654년, 비극에서 왕위까지 - 외교와 복수
642년, 춘추 38세.
대야성이 함락되었다. 딸 고타소랑이 죽었다. 춘추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하지만 슬픔을 전략으로 바꿨다.
'백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하지만 신라는 약하다. 동맹이 필요하다.'
643년, 고구려로 갔다.
도움을 청했지만 거절당했다.
648년, 당나라로 갔다.
당 태종을 만나 설득했다. "대왕께서는 고구려를 치고 싶으시고, 신라는 백제를 치고 싶습니다. 함께 합시다." 나당동맹 체결. 춘추 인생 최고의 외교 성과였다. 하지만 춘추는 알았다. '당나라를 믿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용해야 한다.'
654년, 춘추 50세.
진덕여왕이 세상을 떠났다. 화백회의가 열렸다. 상대등 알천이 말했다. "김춘추가 왕이 되어야 한다." 춘추, 즉위. 태종무열왕.
50년을 기다렸다. 5세에 "왕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소년이, 50세에 왕이 되었다. 최초의 진골왕.
5. 660~661년, 백제 멸망과 유언 - "고구려를 무너뜨려라"
660년, 춘추 56세.
신라-당 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했다. 김유신이 5만 대군을 이끌었다. 황산벌을 돌파했고, 사비성이 함락되었다.
백제 멸망. 춘추는 폐허가 된 사비성에서 무릎을 꿇었다. "소랑아, 아버지가 원수를 갚았다." 18년 만의 복수였다.
661년 6월, 춘추는 병에 걸렸다. 고구려 정벌을 준비하던 중이었다. 임종 직전, 아들 법민(문무왕)을 불렀다.
"법민아, 고구려를 무너뜨려라. 그리고 당나라를 조심해라. 반드시 배신할 것이다."
661년 6월, 태종무열왕 승하. 57세.
백제는 무너뜨렸지만 고구려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아들이 꿈을 이었다. 7년 후, 고구려가 멸망했고, 15년 후 진정한 통일이 완성되었다. 춘추가 세운 전략의 결실이었다.
🌸 결론: "나도 왕이 될 수 있다" - 야심을 현실로 만든 전략가
김춘추의 어린 시절은 좌절로 시작되었다.
할아버지는 폐위된 왕. 아버지는 왕위를 잇지 못한 왕자.
"너는 왕이 될 수 없다." 5세 소년이 들은 말.
하지만 춘추는 포기하지 않았다.
28세에 선덕여왕을 보며 깨달았다. '여자도 왕이 될 수 있다면, 진골도 왕이 될 수 있다.'
최초의 여왕. 최초의 진골왕. 춘추는 50년을 준비했다.
인재를 모았고, 전략을 짰고, 외교를 했고, 공을 세웠다.
그리고 50세에 왕이 되었다.
힘으로는 왕이 될 수 없었다. 출신으로는 왕위에서 멀었다.
하지만 머리로, 전략으로, 외교로 왕이 되었다.
5세에 좌절한 소년은 28세에 야심을 품었고, 50세에 왕이 되어 56세에 백제를 무너뜨렸다.
그가 남긴 것은 백제 멸망만이 아니었다.
"전례가 없어도 할 수 있다."
"힘이 아니라 머리로 이길 수 있다."
"준비하는 자가 기회를 잡는다."
이것이 김춘추가 보여준 삶이었다.
그가 세운 전략 위에서, 김유신이 싸웠고, 문무왕이 통일을 완성했다.
1,4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폐위된 왕의 손자에서 태종무열왕으로. "왕이 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소년에서 최초의 진골왕으로.
이것이 김춘추가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야심이 만든 전략가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김부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5, 신라본기5 태종무열왕 - 한국고전번역원
- 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 한국고전번역원
참고 서적
- 김영하, 『태종무열왕』, 지식산업사, 2005
- 이종욱, 『김춘추』, 역사비평사, 2000
- 전덕재, 『삼국통일전쟁사』, 주류성, 2009
- 신형식, 『삼국통일과 나당전쟁』, 지식산업사, 2006
학술 논문
- 김창겸, "태종무열왕의 대당외교", 『한국사학보』
- 전덕재, "나당동맹의 성립과 전개", 『한국고대사연구』
- 이기동, "삼국통일과 태종무열왕", 『한국사연구』
관련 기관
- 국립경주박물관
- 한국고전번역원
- 태종무열왕릉 (경북 경주시)
참고 사이트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문화재청
※ 본 글은 『삼국사기』와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김춘추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매우 제한적이며, 진지왕 폐위, 진골 교육 체계, 선덕여왕 즉위가 그에게 미친 영향 등을 당시 신라의 정치·사회 상황과 함께 종합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최초의 진골왕"을 꿈꿨다는 내용은 역사적 정황과 결과를 바탕으로 한 추론입니다. 대야성 함락(642), 나당동맹(648), 왕위 즉위(654), 백제 멸망(660) 등 주요 사건과 연도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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