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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무너지지 않는 사람, 박세리의 어린 시절을 아는가

by onary 2025. 11. 29.

비 오는 날, 소녀는 울지 않았다

박세리는 웃지 않았다. 우승을 확정 짓던 마지막 퍼팅 순간에도, 카메라는 그녀의 얼굴을 포착하지 못했다. 그저 가늘게 떨리는 입술과, 축축이 젖은 골프화 대신 맨발로 선 그 두 발만이 기억에 남았다. 수많은 스포츠 사진 중 단 하나의 이미지로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이 장면은, 마치 상징처럼 오래 남는다. 그런데 이 장면은 단순히 경기에서 이긴 장면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박세리의 ‘인생’이 담긴 몇 초짜리 요약이었다. 맨발, 진흙, 침묵,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고개. 그 모두는 그녀의 성장기에서 이미 익숙했던 요소들이었다.

사람들은 골프라는 종목을 ‘우아한’ 스포츠로 여긴다. 넓은 잔디밭, 조용한 분위기, 흰옷. 하지만 박세리의 골프 인생은 그런 이미지와 달랐다. 그녀의 시작은 맨땅에서, 골프장의 잔디가 아니라 뒷산 언덕에서, 연습장 대신 작은 체육회관에서 시작됐다. 아버지의 야구방망이를 골프채처럼 휘두르며, 공이 아니라 상상 속의 홀을 향해 스윙을 연습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소녀가 세계 무대에 오르고, 진흙 속에서 우승 트로피를 들었다. 박세리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 준비해 준 길을 걷지 않았다. 그녀는 직접 길을 만들었고, 비가 오면 진흙을 밟고, 벽이 나오면 두드리지 않고 부쉈다.

 

아버지와 딸, 골프장을 만든 사람들

박세리가 처음 골프를 시작한 건 11살 무렵이었다. 당시엔 골프 연습장이 귀했고, 골프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부잣집 취미’로 여겨지던 시절이다. 하지만 박세리의 아버지는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전직 야구선수 출신이었고, 스포츠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열정을 지닌 사람이었다. 훈련은 혹독했고, 일정은 군대보다 더 엄격했다. 새벽에 일어나, 어두워지기 전까지 하루 10시간이 넘는 훈련. 도중에 울거나 포기하면 곧바로 퇴근. 훈련 중에는 눈물도, 핑계도 허용되지 않았다. 박세리는 그 시절을 “숨을 쉴 수 없었던 날들”이라고 회고한다.

하지만 정작 그 시간은 그녀의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매일 같이 연습장을 돌고, 매트를 깔고, 아무도 없는 새벽 시간에 퍼터를 연습하던 날들. 그 기억들은 단순한 기술 훈련을 넘어선 것이었다. 그건 체력 훈련이 아니라 인내력과 자제력 훈련이었다. 누구도 박세리에게 골프채를 쉽게 쥐게 하지 않았다. 땀을 흘리지 않으면, 밥을 먹을 수 없었다. “네가 쉬면, 다른 사람은 연습한다.”라는 말은 단순한 격려가 아니라, 그녀에게는 현실이었다.

아버지 박준철은 세리에게 종종 말했다. “골프는 멘탈이야. 기술은 나중이야.” 이 말은 나중에 그녀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뒤에도 변하지 않는 철칙이 되었다. 기술보다 무너지지 않는 마음. 골프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실력이 아니라 표정이라는 것을, 박세리는 누구보다 일찍 배웠다. 그리고 이 철학은 훗날 그녀가 가장 어려운 순간을 만났을 때, 진정한 힘이 된다.

 

20대 초반, 무게는 골프채보다 삶이 더 무거웠다

박세리가 미국 무대에 진출한 것은 1998년, 만 21살이 되던 해였다. 그 해는 그녀에게 영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혹독한 시련의 시작이었다. 언어 장벽, 문화 차이, 외로움, 그리고 가장 큰 건 ‘이겨야만 한다’라는 절박함이었다.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국가대표로서의 책임감이 그녀를 짓눌렀다. 당시 IMF로 인해 나라 전체가 흔들리던 시기였다. 국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구조조정과 실직 속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박세리는 한국을 대표해 미국에서 뛰고 있었다. “나라도 무너졌는데, 나는 질 수 없다.” 그녀가 진흙밭에서 맨발로 볼을 쳤던 그 장면은 바로 그 시기에 나왔다.

1998년, 맨발로 우승한 US오픈. 박세리는 그날 자신이 역사 속 인물이 되리라고는 몰랐다. 그녀는 그저 경기 중간에 해가 지기 전에 볼을 끝까지 치기 위해 신발을 벗었을 뿐이었다. 발이 빠지고, 진흙이 뒤섞였고, 그 상황에서 모든 골퍼가 멈췄지만 박세리는 멈추지 않았다. 아무도 이기지 못한 자연을 이긴 것은, 실력이 아니라 태도였다. 그날 이후 그녀의 이름은 단순한 스포츠 선수의 이름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는 사람의 상징이 되었다.

승리 이후에도 고비는 많았다. 무릎 부상, 슬럼프, 사생활에 대한 무차별적 언론 보도, 끊임없는 기대와 압박. 박세리는 조용히 훈련했고, 말없이 경기를 준비했다. 스포트라이트는 있었지만, 동시에 그림자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늘에서 도망치지 않았다. 골프를 접고 은퇴를 고민했던 시기에도, 스스로 다시 골프채를 들었다. 박세리는 늘 자신에게 물었다. “이건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나는 어디까지 갈 수 있지?” 그 질문이 그녀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그래서 사람들은 박세리를 존경했다. 기술 때문이 아니었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 다시 일어나는 사람, 박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박세리 이후, 길을 걸어간 수많은 이름들

박세리가 우승한 후, 대한민국에는 ‘세리 키즈’라는 말이 생겨났다. 그것은 단순한 유행어가 아니었다. 실제로 그 시절 TV 앞에서 그녀의 경기를 보던 수많은 어린 소녀들이, 골프채를 들었고, 훈련장을 찾았고, 그리고 세계로 나아갔다. 김미현, 박인비, 김세영, 고진영, 전인지… 한국 여자 골프는 이후 세계를 지배했고, 그 시작에는 언제나 한 이름이 있었다. 바로 박세리였다. 그녀는 길을 개척했다. 잔디조차 없던 시대에, 맨발로 걷던 그 길을, 지금은 수많은 이들이 걷고 있다.

그리고 지금의 박세리는 단지 골프 선수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녀는 지도자이며, 멘토이며, 한 세대의 상징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보여준 인간적인 모습은, 다시 한번 대중에게 울림을 줬다. 강하지만 부드러운 사람, 무뚝뚝하지만 따뜻한 사람. 사람들은 알게 됐다. 박세리는 경기장에서만 강한 게 아니었다. 살아오면서 보여준 태도가 강한 것이었다.

박세리는 말한다. “다시 돌아가도 나는 그 길을 간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 길은 외롭고, 고단하고, 진흙투성이였지만, 그 길이 누군가에겐 길을 만드는 길이었다는 것을. 박세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녀가 만든 길 위에는 아직도 수많은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 길은 계속될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한 사람의 발자국은, 결국 세대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우리는 박세리를 통해 배웠다.

무너지지 않는 사람, 박세리의 어린 시절을 아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