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가난한 농가의 소년에서 현대그룹 창업자로
"주영아, 미안하다. 학교는... 계속 보낼 수가 없구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1921년, 강원도 통천.
6세 소년 정주영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는데, 학교에 가고 싶었고 배우고 싶었지만 집이 너무 가난했기 때문이었다.
논밭은 작았고 식구는 많았으며 먹고살기도 빠듯했기에, 학비를 낼 여유가 없었다.
정주영은 그날 결심했다.
'언젠가 나는 이 가난을 벗어날 거야. 서울로 가서 성공할 거야.'
그리고 30년 후, 이 소년은 현대건설을 창업했고 현대자동차를 만들었으며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끈 기업가가 되었다.
이것은 강원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지만, 끝없는 도전으로 세계적 기업가가 된 이야기다.

1.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 6세, 가난과의 첫 만남
1921년경, 정주영 6세.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의 작은 농가에서 아버지 정봉식은 농사를 지었지만, 땅이 적었고 수확도 적어서 여섯 남매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정주영은 어릴 때부터 일을 도왔는데, 밭에 나가 풀을 뽑고 소에게 먹이를 주고 동생들을 돌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정주영이 물었다.
"아버지, 다른 집은 큰 집에 사는데,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작아요?"
아버지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가난하기 때문이란다."
"가난하면 왜 안 돼요?"
"가난하면 먹을 것도 부족하고, 입을 것도 부족하고, 배울 수도 없단다."
정주영은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왜 가난하면 배울 수 없지?'라는 의문만 가슴속에 남았다.
1922년, 정주영 7세.
서당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한문을 배우는 기쁨도 잠시, 1년 만에 그만둬야 했는데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정주영은 서당 선생님에게 인사하며 "집이 가난해서 이제 못 와요"라고 말했고,
선생님은 "주영이는 총명한 아이인데... 참 안타깝구나"라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정주영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울었는데, '나는 왜 가난한 집에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2. 10대, "나는 서울로 갈 거야" -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출
1925년경, 정주영 10세.
동네 부잣집 아이가 서울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서울은 정말 크고 멋있어. 전차도 다니고, 큰 건물도 많고..."라는 말에 정주영의 눈이 반짝였다. "서울... 나도 가보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부잣집 아이는 "너는 못 가. 돈이 없잖아"라고 비웃었다.
정주영은 주먹을 쥐며 '언젠가 나도 서울에 갈 거야'라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1929년, 정주영 14세.
드디어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는데, '서울로 가자'는 생각뿐이었다.
집에서 몰래 나와 걸어서 서울로 가려고 했지만 며칠 걷다가 아버지에게 잡혔고, "주영아, 왜 집을 나갔느냐?"는 질문에 "서울에 가고 싶었어요. 여기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서울 가서 뭘 하려고?" 아버지가 물었고, 정주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일을 할 거예요. 돈을 벌 거예요. 그리고 성공할 거예요."
아버지는 아들을 때렸지만, 정주영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1931년, 정주영 16세.
또다시 가출을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집에서 키우던 소를 팔아서 자금을 마련했다. 아버지 몰래 시장에 내다 판 소 한 마리 값이 70원이었는데, 정주영에게는 큰돈이었고 그 돈으로 서울행 기차표를 샀다.
생전 처음 타는 기차였고, 창밖 풍경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며 정주영은 가슴이 뛰었지만, 기쁨도 잠시 또 아버지에게 잡혀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는 "주영아, 소를 팔다니... 그 소는 우리 집의 전부였는데..."라며 울었고, 정주영도 "죄송합니다, 아버지. 하지만 저는 정말 서울에 가고 싶었어요"라며 함께 울었다.
3. 18세, 세 번째 도전 - "이번엔 성공한다"
1933년, 정주영 18세.
세 번째 가출을 했을 때는 아버지도 더 이상 막지 못했는데, "가거라. 하지만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마라"는 말에 정주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 마세요. 이번엔 꼭 성공할게요"라고 약속했다.
1933년 봄, 서울 도착.
18세 청년 정주영은 서울 거리를 걸으며 전차가 지나가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모습에 압도되었는데, 모든 것이 신기했지만 곧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일자리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는데, 배운 것도 없고 기술도 없으며 아는 사람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을 헤매다가 겨우 복흥상회라는 쌀가게에서 배달부 일자리를 구했고, 주인이 "너, 일 할 수 있겠어?"라고 물었을 때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힘차게 대답했다.
정주영은 배달 일을 시작했는데, 무거운 쌀가마니를 지고 골목골목을 다니는 것이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이것도 시작이야. 여기서부터 올라갈 거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매일 성실하게 일했고, 몇 달 후 주인이 "주영아, 너 참 성실하구나. 이제 가게 점원으로 일해보지 않겠어?"라고 제안했다.
배달부에서 점원으로 승진하는 것은 작은 발전이었지만, 정주영에게는 큰 성공이었고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4. 20대 초반, "나는 사장이 될 거야" - 독립의 꿈
1936년경, 정주영 21세.
복흥상회에서 3년을 일하며 장부 정리도 배우고 장사 방법도 배우고 사람 대하는 법도 배웠는데, 어느 날 '나도 내 가게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에게 "사장님, 제가 독립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고, 주인이 놀라며 "독립? 자네가? 돈은 있나?"라고 물었지만 정주영은 "없습니다. 하지만 일을 해서 모을 겁니다"라고 대답했다. 주인은 "그 정신은 좋구나. 힘내라"며 웃었다.
1937년, 정주영은 빌린 돈으로 경일상회라는 작은 쌀가게를 열었는데, 22세에 처음으로 "사장"이 된 것이었다.
하지만 경험 부족과 자금 부족으로 1년 만에 망했고, 정주영은 모든 것을 잃었다.
실패 후에도 정주영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자리를 찾았는데, 이번에는 아도서비스라는 자동차 수리소에서 일하며 자동차 수리 기술을 배웠다. '언젠가 자동차 사업을 할 거야'라는 꿈은 실패 속에서도 계속 커져갔다.
1940년, 정주영 25세.
다시 독립해서 이번에는 자동차 정비소 아도서비스를 열었는데, 작은 가게였지만 이번에는 성공했다. 성실하게 일했고 고객을 잘 대했으며 기술을 계속 배웠기에, 가게는 점점 번창했고 정주영은 자신감을 얻었다.
정주영은 생각했다. '강원도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지만, 서울까지 왔고, 내 가게를 열었고, 이제 더 큰 꿈을 꿀 수 있다.' 25세 청년의 야망은 훗날 현대건설, 현대자동차, 현대그룹으로 이어졌다.
🌸 결론: 가난을 이긴 끝없는 도전정신
정주영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의 싸움이었는데, 6세에 "학교 못 보낸다"는 말을 들었고 7세에 서당을 그만둬야 했으며 10대 내내 "가난" 때문에 꿈을 포기해야 했다.
"우리 집은 왜 이렇게 가난할까?" 6세 소년이 울며 물었던 질문이었지만, 정주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14세에 첫 가출을 시도했고, 16세에 소를 팔아 서울행 자금을 마련했으며, 18세에 세 번째 도전으로 서울에 정착했다.
그리고 배달부로 시작해서 점원이 되고, 22세에 첫 사업을 시작했으며, 비록 실패했지만 다시 일어나 25세에 자동차 정비소를 성공시켰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섰는데, 경일상회가 망했을 때도 다시 일자리를 찾았고 다시 배우고 다시 도전했기 때문이었다.
정주영이 남긴 것은 현대그룹만이 아니었다.
"가난은 핑계가 될 수 없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서라." "꿈을 포기하지 마라."
이것이 정주영이 보여준 삶이었다.
6세에 학교를 못 다녔지만 14세부터 서울을 꿈꿨고, 18세에 서울에 도착했으며 25세에 첫 성공을 이뤘고, 그 후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끄는 기업가가 되었다. 가난한 농가의 소년이 소 한 마리 값 70원으로 시작해서 세계적 기업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끝없는 도전정신 덕분이었다.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강원도 가난한 농가에서 세계적 기업가로. "가난해서 공부 못 해"라는 말을 이기고 끝없이 도전한 정주영으로.
이것이 정주영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가난이 만든 도전정신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저서
- 정주영, 『이 땅에 태어나서』, 솔출판사, 1998
- 정주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솔, 2001
참고 서적
- 김형민, 『정주영 평전』, 21세기북스, 2011
- 박성수, 『한국의 기업가정신』, 해남, 2007
학술 논문
- 이한구, "정주영의 기업가정신 연구", 『경영사학』
- 김영래,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의 리더십", 『한국경영사학회지』
관련 기관
- 아산나눔재단
- 한국경영사학회
※ 본 글은 정주영 회고록 『이 땅에 태어나서』와 관련 전기,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1915년 강원도 통천 출생, 1933년 서울 상경, 1940년 아도서비스 창업, 1947년 현대건설 전신 창업 등은 역사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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