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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문무왕의 어린 시절, 전쟁터에서 자란 왕자가 용이 되기까지

by onary 2025. 12. 23.

"나는 죽어 용이 되어 바닷속에서 나라를 지키리라."

이 말을 남긴 왕은 평생 전쟁 속에서 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백제와 고구려의 침략이 계속되었고,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적국으로 외교를 떠났으며, 청년이 되어서는 직접 갑옷을 입고 전장에 섰다.

그리고 마침내,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당나라까지 몰아내며, 진정한 삼국통일을 완성했다.

어린 문무왕이 밤에 창가에 서서, 창문 밖 전장의 모습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봄.
(문무왕의 어린시절)

 

626년, 신라 서울(지금의 경주). 태종무열왕이 되기 전, 김춘추의 집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이름은 김법민(金法敏), 훗날의 문무왕(文武王).

그의 아버지는 김춘추 - 신라 최고의 외교가이자 전략가.

그의 외삼촌은 김유신 - 신라 최고의 장군.

그의 어머니는 문희 - 김유신의 여동생이자 지혜로운 여인.

법민은 최고의 스승들 사이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은 평화롭지 않았다. 전쟁, 전쟁, 그리고 또 전쟁.

이것은 전쟁 속에서 자란 후계자가, 아버지의 꿈을 이어받아, 마침내 삼국을 통일하고 용이 된 이야기다.

 

1. "왜 우리는 늘 싸워야 하나요?" - 전쟁의 그림자

632년, 법민 6세.

밤이었다.

집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갑옷 소리, 군사들의 함성.

법민은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에요?" "백제군이 또 쳐들어왔단다." "왜요?" "우리 땅을 빼앗으려고."

신라는 늘 공격받았다.

서쪽에서는 백제가,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가야 땅을 두고는 백제와 계속 전쟁을 벌였다.

어린 법민은 전쟁의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공포는 알았다.

밤마다 들리는 비명, 아침마다 보이는 부상병들, 장례식의 울음소리.

"어머니, 전쟁은 언제 끝나요?" "네가 크면 끝낼 수 있을 거야."

어머니 문희의 말이었다. 6세 소년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전쟁을?'

 

2. 642년, 대야성 함락 - 누이의 죽음

642년, 법민 16세.

인생을 바꾼 비극이 일어났다.

대야성 함락.

백제군이 대야성을 공격했다. 성주는 김춘추의 사위 김품석. 그의 아내는 김춘추의 딸, 법민의 누이 고타소랑.

성은 함락되었다. 김품석은 전사했고, 고타소랑도 죽었다.

소식을 들은 김춘추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법민은 아버지가 우는 것을 처음 봤다. 항상 당당하고 지혜로웠던 아버지가, 바닥에 엎드려 오열했다.

"소랑아... 내 딸... 소랑아..."

법민도 울었다. 누이를 잃은 슬픔, 아버지의 고통을 보는 괴로움.

하지만 더 큰 것을 배웠다.

아버지가 눈물을 닦고 일어서는 모습. "법민아." "네, 아버지." "우리는 반드시 백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네 누이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법민은 그날 맹세했다. '나는 백제를 멸망시키겠다.'

16세 소년의 복수심이 아니었다. 왕자의 사명감이었다.

『삼국사기』 기록: "김춘추는 대야성 함락 후 고구려에 구원을 청하러 갔으나 거절당했다. 이에 당나라로 가서 나당동맹을 맺었다."

 

3. 아버지와 외삼촌, 최고의 스승들

법민은 특별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 김춘추에게서 배운 것:

"법민아, 전쟁은 힘만으로 이기는 게 아니다." "그럼요?" "머리로 이기는 거다. 외교로, 전략으로."

김춘추는 아들에게 지도를 펼쳐 보였다. 신라, 백제, 고구려, 그리고 당나라.

"신라는 작다. 백제와 고구려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요?" "동맹을 맺는 거다. 당나라와 손잡고, 백제부터 무너뜨린다."

법민은 아버지의 전략을 배웠다. 외교의 중요성, 동맹의 가치, 장기적 계획.

외삼촌 김유신에게서 배운 것:

"법민아, 전략도 중요하지만 결국 싸워서 이겨야 한다." "외삼촌, 어떻게 싸워요?" "직접 봐라."

김유신은 조카를 훈련장으로 데려갔다. 군사들이 훈련하는 모습, 전술을 짜는 과정, 무기를 다루는 법.

"왕자라고 해서 궁궐에만 있으면 안 된다. 전쟁터를 알아야 한다."

법민은 외삼촌을 따라 군영에 갔다. 말 타는 법을 배우고, 활 쏘는 법을 익히고, 병법을 공부했다.

두 스승 사이에서 자란 왕자.

아버지는 머리를 가르쳤고, 외삼촌은 힘을 가르쳤다.

법민은 둘 다 배웠다.

 

4. 648년, 나당동맹 - 아버지의 외교

648년, 법민 22세.

아버지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돌아왔다.

나당동맹 체결.

"법민아, 우리가 이겼다." "전쟁도 안 했는데요?" "외교로 이긴 거다. 당나라가 우리 편이 되었다."

김춘추는 아들에게 설명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치고 싶어 한다. 우리는 백제를 무너뜨리고 싶다. 서로 도와주기로 했다."

법민은 감탄했다. '아버지는 전쟁을 하지 않고도 전쟁을 준비하시는구나.'

하지만 의문도 들었다.

"아버지, 당나라를 믿을 수 있나요?" "믿을 수 없다." "그런데 왜 동맹을?" "지금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당나라는 우리의 친구가 아니라 이용할 대상이다."

22세 왕자는 배웠다. 외교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이 교훈은 훗날 당나라와 싸울 때 결정적이었다.

 

5. 654년, 왕세자가 되다 - 아버지의 즉위

654년, 법민 28세.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왕위는 김춘추에게로.

김춘추, 태종무열왕으로 즉위.

법민은 왕세자가 되었다.

즉위식 날, 아버지가 왕관을 쓰는 모습을 보며 법민은 생각했다.

'언젠가 나도 저 자리에 서겠지.' '그때 나는 무엇을 이뤄야 하나?'

즉위 후 첫날밤, 아버지가 불렀다.

"법민아, 앉아라." "네, 아버지... 아니, 전하." "나는 네 아버지다. 둘이 있을 때는 아버지라고 불러라."

김춘추는 아들의 손을 잡았다.

"내가 왕이 된 이유가 뭔지 아느냐?"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요." "그렇다. 하지만 내가 다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버지..." "네가 이어야 한다. 내가 백제를 무너뜨리면, 너는 고구려를 무너뜨려라. 그리고..."

김춘추는 잠시 말을 멈췄다.

"당나라를 조심해라. 그들은 우리를 삼키려 할 것이다."

법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28세 왕세자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실렸다.

 

6. 660년, 백제 멸망 - 복수의 완성

660년, 법민 34세.

마침내 그날이 왔다.

신라-당 연합군, 백제 공격.

김유신이 5만 대군을 이끌고, 당나라 소정방이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를 협공했다.

법민도 출정했다. 왕세자로서, 군을 이끌고.

황산벌 전투.

백제의 계백 장군 5천 결사대가 막아섰다. 신라군은 고전했다.

법민은 전장을 지켜봤다. 처음 보는 진짜 전쟁. 피, 비명, 죽음.

하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진격!"

신라군이 밀고 나갔다. 계백은 패배했고, 사비성이 함락되었다.

백제 멸망.

법민은 폐허가 된 사비성을 걸었다. 18년 전, 누이 고타소랑이 죽은 대야성 함락의 복수.

"누이여, 이제 편히 쉬소서."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7. 661년, 아버지의 유언 - "고구려를 멸하라"

661년, 법민 35세.

아버지 태종무열왕이 병에 걸렸다.

법민은 아버지의 병상을 지켰다.

"법민아..." "네, 아버지." "백제는 무너뜨렸다. 하지만 고구려가 남았다." "아버지, 쉬세요. 제가 하겠습니다." "그리고... 당나라..."

김춘추는 기침을 했다.

"당나라가 변하고 있다. 처음에는 동맹이었지만, 이제는 우리를 삼키려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일단은 함께 고구려를 무너뜨려라. 하지만 그 후에는..."

"당나라와 싸워야 한다."

법민은 충격을 받았다. '동맹국과 싸운다고?'

"아버지, 그럼 우리가 배신하는 건가요?" "배신이 아니다. 살아남는 것이다. 당나라가 먼저 배신할 것이다."

661년 6월, 태종무열왕 승하.

법민은 왕위를 이었다. 문무왕.

즉위식 날, 법민은 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렸다.

"고구려를 멸하라." "당나라와 싸워라."

35세 새 왕의 사명이었다.

 

8. 668년, 고구려 멸망 - 아버지의 꿈 실현

668년, 문무왕 42세.

7년간의 전쟁 끝에, 고구려가 멸망했다.

신라-당 연합군이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문무왕은 소식을 듣고 무릎을 꿇었다.

"아버지, 해냈습니다. 고구려를 무너뜨렸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짧았다.

당나라가 변했다.

백제 땅도, 고구려 땅도 모두 당나라가 차지하려 했다. 신라는 반발했다.

"우리가 함께 싸웠는데, 왜 당나라만 차지하는가?"

당나라: "너희는 충분히 받았다. 더 원하면 전쟁이다."

문무왕은 아버지의 예언을 떠올렸다.

'당나라가 먼저 배신할 것이다.'

맞았다.

 

9. 676년, 나당전쟁 승리 - 진정한 통일

670-676년, 나당전쟁.

문무왕은 결심했다. "당나라와 싸운다."

동맹국이었던 당나라와 전쟁을 벌였다.

처음에는 고전했다. 당나라는 강했다.

하지만 문무왕은 포기하지 않았다.

외삼촌 김유신은 이미 늙었지만, 여전히 전략을 짜주었다.

"문무왕, 우리가 이길 수 있다. 우리는 이 땅을 지키는 것이고, 그들은 침략하는 것이다."

675년, 매초성 전투 승리. 676년, 기벌포 해전 승리.

당나라 수군을 격파했다.

당나라, 한반도에서 철수.

676년, 진정한 삼국통일 완성.

문무왕은 50세였다.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아버지가 시작했던, 외삼촌이 싸워왔던, 그 통일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10. 681년, "나는 용이 되리라" - 왕의 유언

681년, 문무왕 55세.

병이 깊어졌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몸.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문무왕은 바다를 바라봤다.

"나를 화장하여 동해 바다에 뿌려라."

"전하, 그것은..." "나는 죽어서 용이 되어 동해 바다를 지키겠다. 왜구와 외적이 다시는 이 땅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681년 7월 1일, 문무왕 승하.

유언대로 화장되어 동해에 뿌려졌다.

대왕암.

동해 바다 가운데 큰 바위. 사람들은 그곳을 문무대왕릉이라 불렀다. 그리고 믿었다.

문무왕이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고.

 

🌸 결론: 전쟁 속에서 자란 왕자가 용이 되다

문무왕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6세에 전쟁의 공포를 알았고, 16세에 누이를 잃었으며, 28세에 왕세자가 되었고, 35세에 왕이 되었다.

평생을 전쟁 속에서 살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백제를 무너뜨렸고,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며, 당나라까지 몰아내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완성했다.

그리고 죽어서도 나라를 지켰다.

전쟁터에서 자란 왕자는 통일을 완성한 왕이 되었고, 마침내 용이 되어 영원히 바다를 지키고 있다.

문무왕이 남긴 것은 통일신라라는 나라만이 아니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 "외교도, 전쟁도, 모두 필요하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킨다."

이것이 문무왕이 보여준 리더십이었다.

626년에 태어나 전쟁을 보고, 681년에 죽어 용이 된 왕.

대왕암의 파도 소리는 오늘도 문무왕의 약속을 기억하게 한다.

"나는 용이 되어 이 나라를 지키리라."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김부식,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6-7, 신라본기 - 한국고전번역원
  • 일연,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2, 기이 편 문무왕법민 - 한국고전번역원
  •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
  • 『삼국사기』 열전, 김춘추전

참고 서적

  • 이기백, 『신라정치사회사연구』, 일조각, 1974
  • 김영하, 『삼국통일전쟁사』,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1987
  • 노중국, 『백제정치사연구』, 일조각, 1988
  • 신형식, 『삼국통일과 나당전쟁』, 지식산업사, 2006
  • 전덕재, 『삼국통일전쟁사』, 주류성, 2009

학술 논문

  • 이기동,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의", 『한국사연구』
  • 김창겸, "문무왕의 대당정책", 『한국사학보』
  • 신형식, "나당전쟁의 전개과정", 『군사』
  • 서영교, "문무왕릉과 대왕암 연구", 『신라문화』

관련 유적 및 기관

  • 문무대왕릉(대왕암) - 경북 경주시 양북면
  • 감은사지 - 경북 경주시 양북면
  • 국립경주박물관
  • 경주 월성(신라 왕궁터)

전설 및 설화

  • 만파식적 설화 - 『삼국유사』
  • 대왕암 전설
  • 감은사 창건 설화

참고 사이트

  •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한국고전번역원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문화재청

※ 본 글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사료와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문무왕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제한적이며, 당시 신라의 정치 상황, 김춘추와 김유신의 행적, 대야성 함락 등의 역사적 사건을 종합하여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대화 내용은 역사적 정황을 바탕으로 문학적으로 재구성했으나, 백제 멸망(660), 고구려 멸망(668), 나당전쟁(670-676), 대왕암 유언 등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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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대왕암을 방문해 문무왕을 기억해 보세요
  • 삼국통일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세요
  • 아버지의 꿈을 이룬 아들의 효를 배워보세요
  • "죽어서도 나라를 지킨다"는 헌신을 기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