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가난한 집안의 소녀에서 조선 여성 의료의 선구자로
"여자가 무슨 공부를 하냐?" "의사? 여자가 의사라니 말도 안 돼." "미국까지 가서 공부한다고? 미쳤구나."
어린 에스더는 이 말을 들으며 자랐다.
1877년, 평양.
가난한 집안.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홀로 자식들을 키웠다. 박에스더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양반도 아니었고, 부자도 아니었으며, 그저 평범한 평민 집안의 딸이었다.
1870년대 조선에서 여자가 교육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고, 더구나 의사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소녀는 달랐다. 배우고 싶어 했고, 병든 사람을 고치고 싶어 했으며, 조선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 했다.
그리고 23세에 미국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으며, 33세에 순국할 때까지 수많은 여성들의 생명을 구했다.
이것은 평양의 가난한 소녀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고, 한국 여성 의료의 문을 연 이야기다.

1. "배우고 싶어요" - 가난하지만 배움을 갈망한 소녀
1882년경, 에스더 5세.
평양의 작은 집.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어머니 혼자서 자식들을 키웠다.
형편이 어려웠지만, 어머니는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에스더도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갔다. 교회에서 에스더는 처음으로 한글을 배웠다.
선교사들이 가르쳐줬고, 에스더는 빠르게 익혔다. 글을 읽을 수 있게 되자, 세상이 달리 보였다.
성경을 읽고, 찬송가를 읽고, 조금씩 다른 것들도 배웠다. 에스더는 더 배우고 싶었다.
"어머니, 저 학교에 가고 싶어요."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에스더야, 우리 집은 가난하단다. 그리고 여자가 학교를..."
"하지만 배우고 싶어요. 더 많이 알고 싶어요." 어머니는 딸의 눈을 봤다. 간절했고, 진지했다.
"알았다. 교회 학교에서라도 배워보자꾸나."
1886년, 에스더 9세.
운명적인 만남이 있었다.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애니 엘러스(Annie Ellers) 부인이 평양에 왔다.
엘러스 부인은 여성 교육에 열정이 있었고, 평양에서 여학교를 세우려 했다.
에스더가 엘러스 부인을 만났다. 엘러스 부인이 물었다.
"너는 무엇이 되고 싶니?" 에스더가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저는... 병든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병을 고친다? 의사가 되고 싶다는 말이니?"
"의사요? 그게 뭔가요?" 엘러스 부인이 설명했다.
"의사는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사람이란다. 약을 주고, 수술도 하고, 생명을 구하지."
에스더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나요? 저 같은 사람도?"
"물론이지. 너 같은 똑똑한 아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9세 에스더는 그날 꿈을 얻었다.
'나는 의사가 될 거야.'
2. 10대, 선교사 학교에서 배우다 - "나는 조선 여성들을 돕겠다"
1886~1890년대, 에스더 10대.
엘러스 부인이 세운 여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 수학, 과학, 성경까지 배웠다.
에스더는 특히 과학을 좋아했다. 인체의 구조, 병의 원인, 치료 방법.
모든 것이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엘러스 부인이 에스더를 주목했다.
"에스더, 너는 정말 똑똑하구나. 공부를 더 하면 좋겠어."
"더 공부하고 싶어요. 하지만... 어디서 더 배울 수 있나요?"
"미국에 가면 더 배울 수 있어." 에스더가 놀랐다.
"미국이요? 그 먼 나라요?"
"그렇다. 미국에는 훌륭한 학교들이 많아. 거기서 공부하면 진짜 의사가 될 수 있어."
에스더는 가슴이 뛰었다.
'미국... 의사...' 하지만 동시에 두려웠다.
'나 같은 가난한 집 딸이 미국까지 갈 수 있을까?'
1893년경, 에스더 16세.
평양에서 병든 여성을 본 일이 있었다.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병이 든 여인이었다.
남자 의원에게 보이기 부끄러워 병을 키웠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
에스더는 충격을 받았다. '여자 의사가 있었다면... 이 여인을 살릴 수 있었을 텐데.'
그날 에스더는 결심했다.
"나는 반드시 의사가 되어야 한다." "조선 여성들을 위해 여자 의사가 필요하다."
16세 소녀의 사명감이었다.
3. 1894년, 17세에 미국행을 결심하다 - "불가능을 시도하겠다"
1894년, 에스더 17세.
엘러스 부인이 제안했다. "에스더, 미국에 가서 공부하지 않겠니? 내가 도와줄게."
에스더는 망설였다. 집안은 여전히 가난했고, 어머니는 혼자였으며, 미국은 너무 멀었다.
하지만 꿈은 명확했다. '의사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 저 미국에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어머니가 놀랐다.
"미국? 그 먼 곳을?"
"네. 거기서 의사 공부를 할 수 있대요."
"하지만... 돈도 없고, 너 혼자 어떻게..."
"선교사님께서 도와주신대요. 제가 꼭 가야 해요. 조선 여성들을 위해서요." 어머니는 딸의 눈을 봤다.
결연했고, 흔들림이 없었다. "그래... 가거라. 네 꿈을 이루어라."
어머니는 딸을 안아줬다. 두 사람 모두 울었다.
1894년 가을, 에스더는 미국으로 떠났다. 17세.
평양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
그리고 오하이오주 웨슬리언 여자대학에 입학했다.
조선 여성 최초의 미국 유학이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여자가 미국까지 가서 공부한다니..." "의사가 되겠다고? 말도 안 돼."
하지만 에스더는 흔들리지 않았다.
4. 1894~1900년, 미국 유학 - "나는 해낼 것이다"
1894~1896년, 웨슬리언 여자대학.
영어가 서툴렀지만, 에스더는 포기하지 않았다. 밤낮으로 공부했고, 영어를 익혔으며, 과학을 배웠다.
교수들이 감탄했다. "에스더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야."
1896년, 에스더 19세.
의과대학 진학을 결심했다. 당시 미국에서도 여자 의사는 드물었고, 여자 의대생은 더욱 드물었다.
하지만 에스더는 도전했다.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Woman's Medical College of Baltimore)에 합격했다.
1896~1900년, 의과대학 생활.
공부는 어려웠다. 해부학, 생리학, 병리학, 약리학. 모든 것이 낯설고 복잡했다.
하지만 에스더는 참았다. '조선 여성들을 위해.' 그 생각만으로 버텼다.
밤새 공부했고, 실습을 반복했으며, 시험을 통과했다.
1900년, 에스더 23세.
의학박사 학위 취득.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탄생했다. 졸업식장에서 에스더는 울었다. '드디어... 드디어 이루었다.'
5. 1900년 귀국, 그리고 33세 순국 - "조선 여성들을 위해"
1900년, 에스더 귀국. 평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놀랐다. "여자 의사라니!" 하지만 에스더는 개의치 않았다.
즉시 보구여관(여성병원)을 세웠고, 여성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산부인과, 내과, 외과.
남자 의원에게 보이기 꺼려하던 여성들이 에스더를 찾았다.
에스더는 무료로 가난한 여성들을 치료했다. "돈이 없어도 괜찮아요. 제가 치료해 드릴게요."
밤낮없이 환자를 돌봤고, 여성 의료 교육도 시작했으며, 간호사 양성에도 힘썼다.
1910년, 에스더 33세.
과로로 병이 들었다. 10년간 쉬지 않고 일한 결과였다. 임종 직전, 에스더가 말했다.
"조선 여성들을 위해 더 많은 여의사가 필요합니다. 제 뒤를 이어 줄 사람들이 나타나길..."
1910년 4월, 박에스더 순국. 33세. 너무나 짧은 생이었다.
🌸 결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선구자
박에스더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편견으로 가득했다.
평양의 가난한 집안 딸. 아버지 없이 자랐고, 여자라는 이유로 교육받기 어려웠다.
"여자가 의사가 될 수 있겠냐?"
9세 소녀가 들었던 말.
하지만 박에스더는 포기하지 않았다.
9세에 선교사를 만나 꿈을 얻었고, 16세에 사명감을 느꼈으며, 17세에 미국행을 결심했다.
그리고 23세에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한국 최초의 여의사가 되었으며, 33세까지 수많은 여성의 생명을 구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박에스더가 남긴 것은 치료의 기록만이 아니었다.
"여자도 의사가 될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 "조선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라."
이것이 박에스더가 보여준 삶이었다.
9세에 "여자가 의사?"라는 말을 들었지만, 17세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갔고, 23세에 한국 최초 여의사가 되었으며, 33세까지 조선 여성들의 생명을 구했다.
비록 33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 생은 무수한 생명을 살렸다.
그가 연 길 위에서, 김점동, 박현숙 등 수많은 여의사들이 뒤를 이었고, 오늘날 한국 여성 의료의 기반이 되었다.
11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그녀를 기억한다.
평양 가난한 집안의 소녀에서 한국 최초 여의사로. "여자가 의사?"라는 편견을 넘어 여성 의료의 선구자로.
이것이 박에스더가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꿈이 만든 선구자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사료
- 『한국 여의사의 선구자들』 - 대한의사협회
- 북감리교 선교사 기록 - 감리교신학대학교
- 『한국 근대 여성 인물사』
참고 서적
- 박형우, 『한국 근대 서양의학 교육사』, 청년의사, 2008
- 신동원, 『한국 근대 보건의료사』, 한울, 1997
- 김성은, 『한국 여의사의 역사』, 대한의사협회, 2015
- 이배용, 『근대 한국 여성의 삶과 꿈』, 어문학사, 2003
학술 논문
- 박형우, "한국 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 『의사학』
- 신동원, "개화기 여성 의료 교육", 『한국과학사학회지』
- 김성은, "박에스더와 한국 여성 의학의 시작", 『한국의사학회지』
- 이배용, "개화기 여성 교육과 박에스더", 『한국여성사 연구』
관련 기관
- 대한의사협회 의료박물관
- 연세대학교 의학사연구소
- 감리교신학대학교 박물관
참고 사이트
- 대한의사협회
- 한국의 학사연구소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 본 글은 대한의사협회 기록, 북감리교 선교사 문서와 관련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박에스더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직접적 기록은 제한적이며, 개화기 여성 교육 환경, 선교사 학교 상황, 미국 유학 과정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음을 밝힌다. 엘러스 선교사 만남(1886), 미국 유학(1894), 볼티모어 여자의과대학 졸업(1900), 보구여관 설립(1900), 순국(1910) 등은 역사적 사실이다.
💡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용기를 배워보세요
- 여성 선구자들의 희생을 기억하세요
- 꿈을 위해 도전하는 용기를 생각해 보세요
- 한국 여성 의료의 역사를 되새겨보세요
'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김유신의 어린 시절, "너는 가야 놈이다"라는 조롱을 이긴 소년 (0) | 2025.11.25 |
|---|---|
| 광개토대왕의 어린 시절, "고구려는 작은 나라야"라는 무시를 이기고 동아시아 최강국을 건설하다 (0) | 2025.11.24 |
| 최무선의 어린 시절, "중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해"라는 말을 이기고 고려를 구한 화약 과학자가 되다 (1) | 2025.11.23 |
| 허난설헌의 어린 시절, "여자가 글 쓰면 불행해진다"는 말을 넘어 천재 시인이 되다 (0) | 2025.11.21 |
| 이순신의 어린 시절, "너는 그저 평범할 뿐이야"라는 말을 넘어 불패의 명장이 되다 (0) | 2025.11.20 |
| 윤동주의 어린 시절, 암흑의 시대에 별을 본 소년 (0) | 2025.11.19 |
| 유관순의 어린 시절, "여자가 무슨 공부를 하냐"는 말을 넘어 독립의 횃불이 되다 (1) | 2025.11.19 |
| 공민왕의 어린 시절, "왕자이지만 인질입니다"라는 굴욕을 딛고 개혁군주가 되다 (0) | 2025.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