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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박경리의 어린 시절, "여자가 무슨 소설을 쓰냐"는 말을 이기고 한국 문학의 거목이 되다

by onary 2026. 1. 9.

"엄마, 저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1940년경, 14세 소녀 박경리가 말했다.

경남 통영에서 자랐고, 책 읽기를 좋아했으며, 글을 쓰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여자가 무슨 소설을 쓰냐. 시집이나 잘 가면 되지."

"글쓰기는 남자들이나 하는 거야."

박경리는 그날 생각했다.

'그래도 나는 쓰고 싶어. 언젠가 큰 소설을 쓸 거야.'

 

1930년대 통영, 창가에 앉아 책에 완전히 몰입한 10세 박경리. 창밖으로 통영 바다가 보이고, 옆에는 여러 권의 책이 쌓여 있다. 훗날 26년간 토지를 집필할 소녀의 어린 시절

 

그리고 50년 후, 이 소녀는 26년간 "토지" 16권을 완성한 대문호가 되었고,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작을 남겼으며, 6.25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며 집필한 여성 작가의 전설이 되었다.

이것은 경남 통영의 책 읽기 좋아하던 소녀가 전쟁미망인이 되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평생을 글쓰기에 바쳐 한국 문학의 거목이 된 이야기다.

 

1. "책이 너무 좋아요" - 10세, 책 읽는 소녀

1936년경, 박경리 10세.

경남 통영에서 자랐고, 본명은 박금이였다.

아버지 박시규는 지역 유지였고 어머니는 살림을 꾸렸으며, 집안 형편이 괜찮았기에 박경리는 다른 아이들보다 많은 책을 접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였지만 통영은 비교적 문화적인 분위기가 있었고, 집에는 한글 소설책과 잡지들이 있었으며, 박경리는 시간만 나면 책을 읽었다.

통영은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이었고, 집 창문으로 푸른 바다가 보였다.

박경리는 창가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았고, 바다 내음을 맡으며 소설 속 세상에 빠져들었으며, 몇 시간이고 책을 놓지 않았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밖에서 놀 때 박경리는 방 안에서 책을 읽었고, 친구들이 "금이야, 나와 놀자"라고 불러도 "조금만 더 읽고 갈게"라고 대답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왔다.

박경리는 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밥 먹는 것을 잊고 있었다.

"금아, 또 책이냐? 밥도 안 먹고."

박경리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어머니, 이 책 너무 재미있어요. 주인공이 지금 큰일 났는데..."

"책만 봐서 뭐 하니. 여자는 바느질이랑 살림 배워야지."

"하지만 저는 책이 너무 좋아요."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딸이 책을 좋아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너무 빠져드는 것 같았다.

'여자가 책만 읽으면 시집은 어디 가나...'

박경리는 읽은 책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려주곤 했다.

저녁 식사 후, 아버지가 마루에 앉아 있으면 박경리가 다가가 앉았다.

"아버지, 오늘 제가 읽은 책이요..."

아버지는 웃으며 들어줬다. 딸이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했고, '우리 금이는 머리가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 저는 나중에 책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책을 쓰는 사람? 작가 말이냐?"

"네! 소설을 쓰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큰 이야기를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꿈을 가지는 건 좋은 일이지. 하지만 여자가 작가가 되기는 쉽지 않단다."

"그래도 하고 싶어요."

10세 소녀의 눈빛은 진지했다. 아버지는 딸의 어깨를 토닥였다. '글쎄, 세상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텐데...'

박경리는 몰래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책을 사서 일기를 썼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적었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통영 사람들의 이야기, 상상 속 세계의 이야기를 썼고, 쓰면 쓸수록 재미있었다. '나는 분명히 작가가 될 수 있어. 나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좋아.'

밤에 가족들이 자고 나면 촛불을 켜고 글을 썼고, 다음 날 아침 눈이 피곤해도 행복했으며, 책 읽기와 글쓰기가 박경리의 전부였다.

 

2. 10대, "공부를 더 하고 싶어요" - 진주고녀 시절

1940년경, 박경리 14세.

진주고등여학교에 진학했다. 당시 여자가 고등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이었고, 특히 시골에서 자란 여학생이 진주까지 가서 공부하는 것은 더욱 드물었다. 박경리는 운이 좋았다.

아버지가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했고, "금이는 공부를 잘하니 더 배워야 한다"며 진학을 허락했기 때문이었다.

통영을 떠나 진주로 가는 날, 박경리는 설렜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어.'

진주고녀는 경남 지역 최고의 여학교였고, 전국에서 똑똑한 여학생들이 모였다.

일제강점기라 일본어로 수업을 들어야 했고, 조선어 사용은 금지되었으며, 조선 역사 대신 일본 역사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학교 도서관에는 책이 많았고, 박경리는 시간만 나면 도서관에 갔다.

기숙사 친구가 박경리에게 물었다.

"금이야, 너는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 가니? 같이 놀자."

박경리는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해. 나는 책 읽는 게 더 좋아."

"너 정말 특이해. 다른 애들은 다 밖에서 노는데."

"나는 책 속 세상이 더 재미있어. 소설 읽으면 다른 세계로 가는 것 같아."

친구들은 박경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금이는 원래 그래"라며 그냥 두었다.

도서관에서 박경리는 한글 소설을 몰래 읽었다.

일본어 책만 읽어야 했지만, 도서관 구석에는 한글로 된 조선 소설들이 있었다.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소설들을 몰래 빌려 읽었고, 기숙사 이불속에서 손전등을 켜고 읽었으며,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꿈꿨다.

조선어로 글을 쓰는 것은 금지되었지만, 박경리는 몰래 일기를 한글로 썼다.

일본 선생님이 발견하면 혼날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나는 조선 사람이고, 조선말로 글을 써야 해.'

국어(일본어) 시간에 선생님이 작문 과제를 냈다.

일본어로 짧은 이야기를 쓰는 것이었다. 박경리는 열심히 썼고, 선생님이 박경리의 작문을 읽고는 놀랐다.

"박금이, 너는 글을 정말 잘 쓰는구나. 표현력이 뛰어나."

박경리는 고개를 숙였다. 일본어로 칭찬받는 것이 자랑스럽지는 않았지만, '글을 잘 쓴다'는 말은 기뻤다.

"선생님, 저는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어요."

선생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작가? 여자가 작가가 되기는 어렵단다. 특히 조선 여자는 더욱..."

"그래도 저는 하고 싶어요. 꼭 소설을 쓸 거예요."

선생님은 박경리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이 아이는... 정말 될지도 모르겠구나. 눈빛이 보통이 아니야.'

진주고녀 시절, 박경리는 책과 글쓰기에 빠져 살았다.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갔고, 밤에는 기숙사에서 몰래 글을 썼으며, 방학이면 통영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 서재에서 책을 읽었다. 친구들은 "금이는 책벌레"라고 놀렸지만, 박경리는 개의치 않았다.

'나는 작가가 될 거야. 언젠가 큰 소설을 쓸 거야. 우리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를 담은 소설을...'

14세 소녀의 꿈이었지만, 50년 후 현실이 될 꿈이었다.

 

3. 20대 초반, "전쟁이 모든 걸 앗아갔다" - 6.25와 남편의 죽음

1945년, 박경리 19세.

해방을 맞았고, 김행도와 결혼했다. 남편은 지식인이었고 박경리를 이해해 주었으며, 박경리는 행복했다.

두 자녀를 낳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렸으며,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1950년, 6.25 전쟁이 터졌다. 남편이 전쟁에 나갔다.

박경리가 울며 말했다.

"여보, 조심해요. 꼭 살아서 돌아와요."

남편은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 금방 끝날 거야. 곧 돌아올게."

하지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전사 소식이 들려왔고, 박경리는 24세에 미망인이 되었으며, 두 어린 자녀를 혼자 키워야 했다.

박경리는 무너졌다.

'어떻게 살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지? 왜 내게 이런 일이...'

하지만 울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이들이 있었고, 먹여 살려야 했으며, 박경리는 일어섰다.

"나는... 살아야 한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결심했다.

"글을 쓰자. 글을 써서 아이들을 키우자."

 

4. 30-40대, "나는 작가다" - 등단과 고난

1955년, 박경리 29세.

단편소설 "계산"으로 등단했다. 전쟁미망인이 작가가 된 것이었고, 사람들이 주목했지만 쉽지 않았다.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미망인이 무슨 소설을 쓰냐"는 말을 들었으며, 원고료도 적어서 생활이 힘들었다.

하지만 박경리는 계속 썼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일했고, 밤에는 글을 썼으며, 아이들이 자고 나면 책상 앞에 앉아 원고지를 채웠다.

1962년, 박경리 36세.

장편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발표했다.

큰 반향을 일으켰고, 박경리는 이제 중견 작가가 되었으며, "여류 작가"가 아니라 "작가 박경리"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박경리는 만족하지 않았다.

'나는 더 큰 소설을 쓰고 싶다.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역사를 담은 대하소설을...'

 

5. 40-60대, "26년간 토지를 쓰다" - 필생의 대작

1969년, 박경리 43세.

"토지" 집필을 시작했다.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그리는 대하소설이었다.

박경리는 강원도 원주에 정착했고, 오로지 집필에만 몰두했다.

처음에는 몇 년이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쓰면 쓸수록 이야기가 커졌고, 등장인물이 늘어났으며, 역사적 고증이 필요했다.

박경리는 자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고, 도서관에서 밤을 새우며 연구했으며, 하루도 쉬지 않고 원고지를 채웠다.

사람들이 물었다.

"박경리 선생님, 토지가 언제 끝나나요?"

박경리는 한숨을 쉬었다.

"모르겠어요. 쓰다 보니 끝이 안 나네요. 하지만 끝까지 쓸 겁니다."

10년이 지났고, 20년이 지났다. 박경리는 6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토지를 쓰고 있었다.

건강이 나빠졌고, 눈도 침침해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이건 내 인생이야. 토지를 완성하는 것이 내 사명이야."

1994년, 박경리 68세.

드디어 토지가 완간되었다. 총 16권, 5부, 26년의 집필 끝에 완성된 대작이었다. 박경리는 원고지를 내려놓고 울었다.

"드디어... 끝났다."

26년간 함께 살아온 등장인물들과 이별하는 순간이었고, 평생의 과업을 마친 순간이었다.

 

6. 말년, "토지는 내 인생이었다" - 2008년 생을 마감

2008년 5월 5일, 박경리 82세.

원주에서 생을 마감했다. 토지를 완성한 지 14년이 지난 후였고, 박경리는 마지막까지 글을 쓰며 살았다.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토지를 읽으며 자란 독자들, 박경리를 존경하는 작가들,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박경리가 남긴 토지는 한국 현대문학 최고의 대작으로 평가받았고,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국인의 삶과 역사를 담은 걸작이었으며, 앞으로도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읽힐 작품이었다.

 

🌸 결론: 10세의 꿈을 68세에 완성한 대문호

박경리의 어린 시절은 책과 꿈으로 채워졌다.

10세에 책 읽기를 좋아했고, 14세에 작가를 꿈꿨으며, 19세에 결혼했지만 24세에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여자가 무슨 소설을 쓰냐."

10세 소녀가 들었던 말이었다.

하지만 박경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29세에 작가로 등단했고, 홀로 두 자녀를 키우며 글을 썼으며, 43세에 토지를 시작했고, 26년간 하루도 쉬지 않고 집필했으며, 68세에 16권의 대작을 완성했다.

박경리가 남긴 것은 토지만이 아니었다.

"여자도 위대한 작품을 쓸 수 있다."

"전쟁미망인이라도 꿈을 포기하지 마라."

"26년이 걸려도 끝까지 완성하라."

"글쓰기는 인생이다."

이것이 박경리가 보여준 삶이었다.

통영의 책 읽기 좋아하던 소녀가 전쟁으로 남편을 잃었지만 무너지지 않았고, 홀로 자녀를 키우며 작가가 되었으며, 26년간 토지를 집필해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거작을 완성했다.

우리는 그녀를 기억한다.

책 읽기 좋아하던 통영 소녀에서 한국 문학의 거목으로. 전쟁미망인에서 26년 집필로 토지를 완성한 대문호로.

"여자는 안 돼"라는 말을 이기고 위대한 작가가 된 박경리로.

이것이 박경리가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꿈이 만든 대작가의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전기

  • 박경리문학공원, 박경리 평전, 2010
  • 한국문학평론가협회, 박경리 연구, 2009

참고 서적

  • 박경리, 토지(전 16권), 솔출판사, 1994
  • 박경리, 박경리 문학 전집, 마로니에북스, 2012
  • 현길언, 작가 박경리, 웅진지식하우스, 2008

학술 논문

  • 권영민, "박경리 토지 연구", 한국현대문학연구
  • 김윤식, "박경리 문학의 세계", 문학사상
  • 이상경, "박경리의 생애와 문학", 한국문학연구

관련 기관

  • 박경리문학공원(원주)
  • 한국문학관
  • 한국문인협회

※ 본 글은 박경리 관련 전기, 학술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1926년 통영 출생, 1950년 남편 전사, 1955년 등단, 1969년 토지 집필 시작, 1994년 토지 완간, 2008년 사망 등은 역사적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