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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인의 어린시절

최불암의 어린 시절, "가난해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국민 배우이자 30년 의료봉사의 천사가 되다

by onary 2026. 1. 19.

1940년 경북 영주, 가난한 집에서 한 소년이 태어났다. 본명은 최봉암이었고 집안은 몹시 가난했으며, 아버지는 막노동으로 겨우 생계를 이었다. 이것은 경북 영주 가난한 집안의 소년이 배움의 기회를 놓쳤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연극을 통해 배우의 길을 걸었으며, 성공한 후에도 가난한 시절을 잊지 않고 평생 봉사하며 살아온 이야기다.

 

1946년 경북 영주, 가난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는 6세 최불암이 마당에 앉아 새 가방 멘 또래 아이들이 학교 가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장면
최불암 어린 시절 - 학교 가는 아이들을 부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소년

1. 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 - 1940년대, 영주의 가난

최불암은 1940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대대로 가난했고 아버지는 날품팔이로 일했으며, 어머니는 남의 집 일을 도우며 품삯을 받았다. 형제가 많았고 먹을 것이 부족했으며, 소년 최봉암은 어릴 때부터 가난이 무엇인지 알았다. 다른 집 아이들은 쌀밥을 먹었지만 최봉암의 집에서는 보리밥에 나물을 먹었고, 겨울에는 추워서 이불속에서 동생들과 옹기종기 모여 잤으며, 여름에는 모기에 물려도 모기장이 없어서 그냥 참았다.

1946년 소년이 여섯 살이 되었을 때 동네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했다. 새 옷을 입고 새 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아이들을 보며 소년도 가고 싶었지만, 집안 형편이 허락하지 않았다. 학비를 낼 돈이 없었고 공책과 연필을 살 돈도 없었으며, 부모님은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소년은 울지 않았지만 가슴이 아팠고,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이면 집 마당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봤으며, 저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있을까, 나는 왜 배울 수 없을까 하고 생각했다.

학교에 가지 못한 소년은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 아침이면 물을 길어 나르고 밭에 가서 풀을 뽑았으며, 동생들을 돌보고 집을 지켰다. 다른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놀 때 소년은 여전히 일을 하고 있었고, 저녁이 되면 피곤한 몸으로 집에 들어와 잠들었다. 그렇게 소년의 어린 시절은 학교 대신 노동으로 채워졌고, 배움의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갔으며, 소년은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2. 동네 연극에서 발견한 꿈 - 1950년대, 청년이 된 최봉암

1950년 6.25 전쟁이 터졌다. 열 살 소년이었던 최봉암은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했고, 피난을 가야 했으며, 더욱 가난해진 삶을 살아야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고, 열다섯이 된 최봉암은 여전히 배우지 못한 청년이었으며, 막노동을 하며 가족을 도왔다. 하지만 청년의 마음속에는 무언가 다른 것을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고, 이대로 평생 노동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있었으며, 기회를 찾고 있었다.

1955년경 영주에 극단이 왔다. 서울에서 내려온 작은 극단이었고 마을 회관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으며, 청년 최봉암은 호기심에 공연을 보러 갔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연기를 하고 있었고, 슬픈 이야기에는 사람들이 울었으며, 웃긴 장면에는 사람들이 웃었다. 최봉암은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뛰었다. 저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구나.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공연이 끝난 후 청년은 극단 사람들을 찾아갔다. 배우들이 분장을 지우고 있었고, 청년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자신도 연극을 하고 싶다고,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극단원 중 한 명이 청년을 보며 물었다. 학교는 다녔느냐, 글은 아느냐, 연기를 배운 적이 있느냐.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학교에 가지 못했고 글도 제대로 모르며 연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솔직히 말했다. 극단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지만, 청년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는 말했다. 서울로 오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고.

 

 

3. 서울행, 그리고 배우 수업 - 1960년대, 무대에 서기까지

1960년 스물 살이 된 최봉암은 서울로 갔다. 부모님은 걱정했지만 청년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고, 청년은 주머니에 몇 천 원을 넣고 영주를 떠났다. 서울은 낯설었고 사람들은 바빴으며, 청년은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명동 거리를 걸으며 극장을 찾았고, 극단 사무실을 찾아다니며 일자리를 구했으며, 대부분 거절당했다. 학력도 없고 경험도 없으며 연기를 배운 적도 없는 청년을 받아줄 곳은 없었다.

하지만 청년은 포기하지 않았다. 낮에는 극장 앞에서 전단을 나눠주고, 밤에는 극장 청소를 하며 돈을 벌었으며, 틈틈이 연극을 보며 배우들의 연기를 관찰했다. 어떻게 목소리를 내는지, 어떻게 몸을 움직이는지,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는지 눈여겨봤고, 집에 돌아와서는 혼자 따라 해 보며 연습했다. 글을 제대로 모르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청년은 야학에 다니며 한글을 배웠고, 신문을 사서 모르는 글자를 하나하나 찾아가며 읽었으며, 몇 달이 지나자 대본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1963년경 작은 극단에서 단역 기회를 얻었다. 대사가 한두 줄뿐인 역할이었지만 청년에게는 큰 기회였고, 처음으로 무대에 선다는 것이 떨렸지만 최선을 다했다. 첫 공연은 실수투성이였고 대사를 까먹기도 했지만, 청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무대에 섰다. 단역을 수십 번 하고 조연을 하고 주연을 하기까지 7년이 걸렸으며, 그동안 청년은 쉬지 않고 연기를 배우고 연습했다. 1970년 서른 살이 된 최봉암은 이제 제법 알려진 연극배우가 되어 있었고, TV 드라마에도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배우로서의 길이 열리고 있었다.

 

 

4. 전원일기와 시골의사 - 1980-2000년대, 국민배우와 봉사

1980년 MBC 드라마 전원일기가 시작되었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가족 드라마였고, 최불암은 가장 역할인 최영감을 맡았으며, 이 역할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전원일기는 20년 넘게 방영되며 국민 드라마가 되었고, 최불암의 최영감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캐릭터가 되었으며, 최불암은 국민 배우로 자리 잡았다. 가난했던 영주의 소년이 이제 온 국민이 아는 배우가 되었고, 학교에 가지 못했던 청년이 TV 속에서 따뜻한 아버지를 연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불암은 성공 후에도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했던 기억이 있었고, 약을 살 돈이 없어 아팠던 경험이 있었으며, 그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1990년대 초 최불암은 시골의사 활동을 시작했다. 의사는 아니었지만 의료봉사단을 조직했고, 전국의 가난한 농촌과 산간 마을을 찾아다니며 무료 진료를 지원했으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품과 의료기기를 기부했다. 처음에는 1년에 몇 번 정도였지만 점점 횟수가 늘어났고,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고 30년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시골의사 활동은 조용히 이루어졌다. 언론에 알리지 않았고 사진을 찍지도 않았으며, 최불암은 그저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산간 마을 어르신들은 최불암을 보며 고마워했고, 어떤 할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손을 잡았으며, 최불암도 그때마다 가슴이 뭉클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누군가 이렇게 도와줬다면 좋았을 텐데, 지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30년 넘게 이어진 봉사 활동으로 수만 명의 사람들이 도움을 받았고, 최불암은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봉사자로서도 존경받게 되었다.

2000년대 들어 최불암은 여든을 넘겼지만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를 계속하고, 시골의사 활동도 계속하며, 후배 배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한 인터뷰에서 최불암은 말했다. 자신은 학교에 가지 못했지만 연극이 자신을 가르쳤고, 가난했지만 그 경험이 자신을 더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었으며, 배우로 성공한 것도 감사하지만 봉사를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이 더 큰 축복이라고. 영주의 가난한 소년은 이제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배우 중 한 명이 되었고, 그의 삶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결론: 가난을 극복하고 봉사로 보답한 국민 배우

최불암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배움의 부재로 채워졌다. 1940년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학교에 가지 못했고, 여섯 살 때 다른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부러워하며 바라봤으며, 열 살 때 6.25 전쟁을 겪고 더욱 가난해졌다. 열다섯 살에 동네 연극을 보며 배우의 꿈을 꿨고, 스무 살에 서울로 가서 7년간 단역을 하며 배우 수업을 받았으며, 서른 살에 연극배우로 자리 잡았다. 마흔 살에 전원일기로 국민 배우가 되었고, 오십 대부터 30년 넘게 시골의사 활동을 하며 수만 명을 도왔으며, 여든을 넘긴 지금도 봉사를 계속하고 있다.

최불암이 남긴 것은 연기만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지 못해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것, 가난했던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봉사의 동력으로 삼는 것, 성공한 후에도 겸손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것을 보여줬다. 영주의 가난한 소년이 배움의 기회를 놓쳤지만 연극을 통해 배웠고, 단역에서 시작해 국민 배우가 되었으며, 성공 후에도 가난한 사람들을 잊지 않고 평생 봉사하며 살아왔다.

우리는 그를 기억한다. 학교에 가지 못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영주의 소년에서 전원일기의 최영감이자 시골의사로 존경받는 국민 배우로. 이것이 최불암이 걸어온 길이고, 어린 시절의 가난이 만든 봉사와 나눔의 삶이 된 이야기다.


참고문헌 및 출처

주요 인터뷰

  • 최불암, 각종 언론 인터뷰 (KBS, MBC, SBS 등)
  • 최불암, 시골의사 30년 특집 인터뷰, 2020

참고 서적

  • 한국방송공연예술인총연합회, 한국 연극 100년사, 2008
  • MBC, 전원일기 20년 기념 자료집, 2001

다큐멘터리

  • KBS 다큐멘터리 '최불암, 시골의사 30년' (2020)
  • MBC 스페셜 '국민배우 최불암' (2015)

학술 논문

  • 김성희, "한국 TV 드라마의 아버지 캐릭터 연구 - 전원일기를 중심으로", 방송문화연구
  • 이민자, "연예인 사회봉사 활동의 의미와 영향", 사회복지연구

관련 기관

  • 한국연극협회
  • 한국배우협회
  • 시골의사 봉사단

※ 본 글은 최불암 선생님의 각종 인터뷰, 다큐멘터리, 언론 보도를 바탕으로 작성했다. 1940년 경북 영주 출생, 학교 미진학, 1960년 서울 상경, 1970년대 연극배우 활동, 1980년 전원일기 출연, 1990년대 초 시골의사 활동 시작 등은 공개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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